한국일보

기자의 눈/ “내 탓이오”

2008-01-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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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1부 부장대우)

년 한국에서 천주교 평신도협의회가 주축이 돼 ‘내 탓이오’ 운동을 전개해 사회적인 반향을 얻은 적이 있다. 당시 이 운동은 사회에 만연돼 있던 황금만능주의와 인간 경시 사상 등의 풍조에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 전개됐다.

‘내 탓이오’라는 이 운동의 문구는 흔히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과 같은 책임 회피에 대한 강렬한 경고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남의 탓으로 돌리는 버릇은 쉽게 버리기 힘든 모양이다. 지난 8일 한국의 경기도 이천에서 냉동 창고의 폭발 및 화재로 40명(8일 현재)이 사망한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직후 조만간 집권당이 될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가 ‘이 화재는 노무현 정권의 인재’라고 말한 뒤 오히려 비난의 역풍을 맞고 있다.


경기도지사부터, 이천 시장, 지역 국회의원 등이 모두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습관적으로 노무현 탓을 하다 보니 그런 것이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사실 남의 탓을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구분해야 할 부분에서 누구 때문이라고 단정을 지음으로써, 그 책임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고 그냥 덮어지는 경우도 많다. 정치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법이다. 각종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까지 참패를 당한 현 범여권에서는 아직도 니 탓 타령을 하고 있다고 하니...

요즘 한국에서는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댓글 달기가 인기라고 한다. 이런 식이다. 무자년 증시 급락 출발, 코스피 43포인트 하락→ 돈 없고 못 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대운하로 환경 좀 망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위장취업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BBK 어찌 됐건 무슨 상관,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유동근이 PD 패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등등이다.

자업자득이기는 하지만, 모든 문제를 남 탓 또는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빈정대는 것이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다. 또다시 ‘내 탓이오’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뱀 꼬리 하나=최근 한국의 서해 살리기 운동이 범동포적으로 전개됐다. 충청도 출신의 한인들이 처음 시작했고, 뉴욕한인회와 지역한인회, 직능단체, 평통, 교회협의회 등이 태안 앞바다의 석유 유출의 참혹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동참했다.

그런데 동참 기자회견 직후 교회협에서는 각자 성금 모금을 하기로 했다면서 가두모금 등에서 빠졌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후원회에 이름을 내걸던 그 많은 교회의 목사들은 왜 서해 살리기 같은 범동포적인 운동에는 안보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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