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모(歲暮)와 함께 ‘편견’을 내려놓자

2007-12-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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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사무국장)

세모의 혹한이 뼛속까지 사려오는 주일 아침, 지극한 정성으로 장애아를 키우는 이웃의 한 어머니를 보면서 문득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내 어릴적 동화에서 본듯한 내용이다.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 아직 제 힘으로 날기에는 버거운 어린 새 한마리가 다쳐있는 걸 본 농부가 그 아기 새를 치료해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주워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그 길을 따라 농부의 머리 위를 맴돌며 구슬프게 울던 어미새의 모습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한 바로 그 장면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라면 모진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사
람은 장애아를 자녀로 둔 부모가 아닐까 한다. 더구나 친조카가 장애아인 내 입장에서 이런 확신은 더욱 깊어만 간다. 우리 부모들은 건강한 아이들의 성적을 놓고도 웃음꽃이 피거나 울상을 짓는데 극진한 뒷바라지 없이 홀로 서기 어려운 장애아를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그래서 나는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부모 보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에 더욱 감동을 받는다. 이 분들은 비록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장애아를 두었지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천형(天刑)’처럼 받아들이고 아이를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보살피며 강한 인내심을 발휘한다. 하지만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정작 견디기 어려운 것은 곱지않은 타인의 시선, ‘편견’이다.


‘편견’이란 개인적인 소견이나 편의대로 남의 외모와 첫인상만 보고 섣불리 모든 걸 판단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편견’이란 말은 으레 ‘장애인’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미국사회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지만 유독 한인사회에서는 여
전히 이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어 안타깝다.흔히 ‘신은 마음을, 사람은 겉모습을 먼저 본다’고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겉모습에 치우치는 ‘편견’ 때문에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고 한다. ‘편견’을 가진 사람의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아 이면을 보지 않으려 한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서는 바깥 세상이 보인다. 내가 웃고 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웃으며 손을 내밀어 준다. 하지만 유리에 금이나 은을 칠하면 자기만 보
이는 거울이 된다. 금은으로 사방에 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울 속 사람처럼 자기와 자기 가족만 바라보며 그것이 ‘편견’의 감옥인 줄도 모르는 채 살아간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작품에서 ‘고통받는 극한상황에서 피어나는 희생정신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요 덕목’이라고 했다. 장애인 가족처럼 어려움 속에서, 때론 마음의 상처 속에서도 소중한 사랑과 희망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조건’을 갖춘 분들이 아닐까. 이제라도 우리는 가족이기주의라는 ‘편견’의 성곽을 깨고 나와 상처받고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보자.문명의 이기가 판치는 요즘, 누구든 자칫 한순간에 장애자가 될 수 있다. 사랑은 부메랑 같아 언젠가 꼭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내 이웃을, 더구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불편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겉모습의 ‘편견’ 때문에 그 아름다운 내면을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교회나 성당, 절에 다니면서 거룩한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살아가는 가치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참된 종교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지금 크리스마스다 연말연시다 하여 분위기가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외롭고 가진 게 없고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이 계절은 몹시도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라는 걸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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