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진정성과 정치철학

2007-12-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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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리


인간이 역사를 이루며 문명의 단계에 들어선 이후를 관찰해 보면 승자와 패자와의 전투적인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분법적인 논리구조가 내재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인간은 둘만 모여도 서로 다투어 지배하려는 속성을 갖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승자의 무대만이 존재하는 전투적인 상황이다. 역사는 늘 승자의 편에서 기록되고 사건화 되고 합리화 된다. 승자의 존재 방식은 힘의 논리이며, 설득의 논리이다. 역사를 가르며 다시금 역사를 창조하고, 그 역사 위에 군림한다. 현대사회가 민주적인 제도와 이념 속에 존재한다 하나 여전히 승자를 위한 삶의 방식은 철저하고 냉정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적인 역사의 내면성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역시 인간 삶의 진정성에 바탕을 둔 위대한 정치철학이다.


정치철학에 시대를 초월한 진정성이 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 앞에 늘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곤 한다. 사회과학 중에 정치학 만큼 사회션상 속에서 권력과 그 상하 구조에 천학하는 학문도 없을 것이다. 인간을 정치적인 동물로 분류한다면 인간 본연의 진정성을 정치활동과 규범 속에서 찾는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인간의 사회성 속에서도 정치적인 지배욕 만큼 강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가 집단체제를 이루고 사회관계를 이루며 제일 먼저 대두된 것이 정치적인 지배 욕망이다.그렇다면 수천년 전 인류문명에 화려한 꽃을 피웠던 아테네의 한복판에서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규범이나 도덕, 윤리의식이 과연 인간의 진정성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가, 이상주의 정치를 실현하려던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추종하는 제자들과 함께 탈옥하여 도피했다면 그는 평범한 철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역저 ‘국가론’을 통해 도덕과 윤리로 무장한 지혜로운 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이상주의 정치를 집대성한다.

만일 고어가 선거 소송을 벌여 기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그는 유능한 대통령 중의 한 명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금 강력한 대통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그의 모습에 더욱 삶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너무도 이상주의 정치를 실현하려하다 실패한 카터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인류의 인권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감동과 카리스카가 느껴지는 것은 그의 진정성이 정치 지도자로서의 한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진정성이 가득한 삶, 차디찬 감옥, 온 몸을 휘감는 동짓달 냉기 속에서도 피워낸 민주화의 꽃, 우리를 미치도록 잠 못들게 한 역사 앞에서 우리의 진정성은 먼저 간 수많은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참다운 시대정신 속에서 자신을 불태우며 80년대 우리를 치열하게 역사 앞에 나서게 했던 그 시대정신, 광화문으로 서울역으로 우리의 언어와 몸짓은 곧 우리 삶의 진정성이었다. 그 진정성 속에서 젊은 날을 보낸 세대가 주역이 된 한국정치의 현실은 과연 진정성에 얼마만큼 다가가 있는가.

서구와 동아시아에서 한물 간 구태의연한 좌파지식이론으로나마 분단과 통일, 민주화라는 한국적 특수상황을 이해하려던 용기와 진정성이 오늘날 한국적 정치철학으로 자리 잡았는가. 그것이 이 시대의 한 가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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