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덕목 갖춘 대통령 선출돼야

2007-1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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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신학생)

성서에 보면 놀라운 깨달음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예수와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요한복음서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에게 끌고 온다. 그들의 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지 예수에게 묻는다. 죽이라고 하던 살리라고 하던 간에 예수를 시험해서 체포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다. 예수는 몸을 굽혀 땅위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평정을 잃은 무리들이 다그쳐 묻는다. “어서 대답하시오! 이 여자를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 때 비로소 예수의 놀라운 명언이 나온다. “당신들 가운데서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허를 찌르는 예수의 말에 모두들 충격을 받을 것일까. 긴장감 도는 적막이 흐른다. 사람들은 쥐었던 돌을 놓고 삼삼오오 떠나기 시작한다. 모두들 무대에서 사라진 뒤 예수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집으로 보낸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에 앞서 우선 자신을 돌아보라는 자아반성의 교훈이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놀라운 예수의 일언을 뒷받침하는 더욱 놀라운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의기양양하게 돌을 든 무리들의 자세다. 그들은 예수의 자아성찰 요구를 귀담아 들었다. 그들이 그 말을 진지하고 성숙한 태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 사건의 결말은 비극적일 것이다. 긴장감 도는 적막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자아반성의 시간이었다. 광분해서 돌을 움켜쥔 사람들이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그 돌을 내려놓는 장면은 인격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남의 눈의 먼지는 보기 쉬워도 나의 눈의 들보는 보기 어려운 법이다. 그만큼 자신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통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시간을 통해 자신들의 허물을 깨달았고 아무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다.대선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에서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역시나 낯 뜨거운 네거티브 공방이 오고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서로 상대방의 허물과 과오를 드러내고 비난하는데 주력한다.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정책 토론과 대결은 볼 수 없고 다른 후보의 결점들을 찾아 드러내는 모습만 난무한다. 이러한 선거운동은 정치인들에게도 국민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네거티브 전략은 지지자들의 내부 단결은 도모할 수 있어도 외부의 표심을 얻지는 못한다고 한다. 간음한 여인을 이런 사람들이 잡아왔다면 아마도 자아성찰은 커녕 주위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위를 던졌을 법하다.

대통령 후보들의 치명적인 결점을 논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특히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깨끗한 도덕성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국가 지도자로 세우는 것은 한 국가의 도덕성과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각 후보의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 관심은 지도자의 도덕성보다는 유능한 지도력에 있는 것 같다. 특히 경제발전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여기서 경제 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지, 어떤 사회계층을 위한 발전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한 가지만 바라고 싶다. 수백만의 표심이 변하기 보다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더 쉽다면 후보 자신이 깊은 자아성찰을 통해 개과천선하기를 기대한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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