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잡초처럼 살아남아야

2007-1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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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대통령되는 것만큼 쉽지 않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인생이다. 하늘의 나이, 즉 우주의 나이로 관측하면 인생의 나이는 그리 길지 않다. 한 순간. 찰나에 불과하다. 번갯불이 천둥과 함께 치며 잠깐 왔다 가는 것과 비슷하다. 태어났나 하면 언젠가는 죽는다. 인생 길게 90은 우주의 나이 수백, 수천억 년에 비한다면 짧다.

인생을 산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다. 이 눈치 저 눈치 보아야 한다.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집에 들어가면 마누라 눈치, 직장에 나가면 상사의 눈치, 자식들이 있으면 자식들의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더 깊게 들어가면 자신이 자신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대통령이 되면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려나.


금년엔 두 사람의 뉴욕거주 뉴저지거주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25년이 넘게 교류를 가져왔고 또 한 사람은 15년이 넘게 교류를 가져왔다. 한 사람은 60이 되기 전에 떠났다. 또 한 사람은 70이 되기 전에 떠났다. 떠나고 나니 남는 게 무엇이 있나. 그들의 생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가 얼마나 긴 것이었나. 가고나니 무척 짧은 감이 든다. 일부러 그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가는 사람을 그냥 조용히 보내주고 싶었다. 평안한 곳. 영원한 곳으로 가는데 조용히 보내주고 싶었다. 마음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그들은 지금 세상에 없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살아있다. 아주 간 것이 아니다. 아직도 그 두 시인은 그들의 시 속에 살아있음에야. 이 글 안에서도 그들은 살아 있음을 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숙제는 인생이다. 막연히 인생이라 함은 무엇인줄 모르게 된다. 인생을 인간으로 바꾸면 더 숙제와 가까워진다. 인간. 인간만큼 이 세상에 수수께끼는 없다.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숙제가 인간, 인생이다. 그럼 그 숙제란 무엇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태어남과 죽음이다. 인간의 생사가 종교를 낳게 한다.
인간의 생사 문제만 풀리면 사는 게 좀 수월해 질 텐데. 아니 사는 게 너무나 행복해 질 텐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태어나 살다 죽는다. 아주 간단하다. 뭐 그리 복잡한 공식이 없다. 그냥 태어났으니 주어진 환경대로 살다 죽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살아가는
게 그냥 막 살아지는 게 아니다. 순간순간 점치며 살듯 살아가는 게 또한 인생이다.

원효와 의상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원효는 가다말고 다시 신라로 돌아왔다. 의상은 중국으로 들어갔다. 원효의 되돌림 이유는 간단하다. 깨쳤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고 시원하게 잠을 자고난 원효. 깨어나 보니 해골이었다. 여기서 그는 깨친다. 모두가 다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고. 일체유심조. 산다는 게 이렇게 깨치면 쉬울 텐데 그렇지가 못하다.
대선이 며칠 안 남았다. 12월19일. 한국에서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다. 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후보들이 나와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아우성이다. 참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도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대통령이 되면 천년만년 산다든가. 대통령 후보들은 그런대로 명분이야 있다 하겠
지만 그 후보들 밑에 들어가 아양들을 떠는 떨거지들은 또 무엇인가. 사는 게 쉽지 않다.

조선족 두 남녀가 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왜 죽었을까. 살아가기 힘들어서, 아니면 살기가 싫어서. 둘 중의 하나일 게다. 살기 좋고 살아가기 쉽다면 죽을 리가 있겠나. 잘못된 애정의 만남이었다 하더라도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건데. 그러나 죽었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다. 도피다. 도피는 차선책이라도 절대 해결책은 아니다. 사람의 어리석음이 여기에 있다. 죽긴 왜 죽나. 살아야지. 죽도록, 죽을 결심 갖고 살아야지. 끝까지 살아야지. 죽는다고 무엇이 해결되나. 아니다.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세상은 그냥 그대로 돌아간다. 있는 자들은 계속 배부르고 없는 자들은 계속 굶주리고. 이게 세상이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의 구조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왜 망했나. 빈부 차를 없애려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세상 그 어느 곳에 가도 있는 게 배부른 자와 굶주린 자다. 북한은 안 망했다. 이름만 공산주의다. 북한의 위의 것들은 배가 터진다. 사는 건 쉽지 않듯, 대통령되기 쉽지 않다. 대선 앞으로 11일. 유력 후보 암살설이 솔솔 나돈다. 폭력은 금물이다. 현 정권의 마지막. 힘 가진 자들은 무슨 꿍꿍이속을 하고 있는지. 힘 있고 가진 자들에게 당하는 건 힘없는 아래의 민초들뿐이다. 짧은 인생. 찰나와 같은 생이다. 죽을 날은 힘 안 들여도 온다.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잡초처럼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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