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홀리 랜드

2007-1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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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행(시인)

노던 블러바드를 따라 롱아일랜드 방향으로 달리다가 그레잇넥에 이르면 마치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연상케 하는 자그맣고 아름다운 교회가 왼쪽 길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지난 10월 말 경, 나는 마치 잘 다듬어진 공원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 속에 차를 몰고 천천히 교회로 들어섰다.

널직한 잔디밭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어우러져 한껏 가을의 정취를 더하게 한다. 그 날은 뉴욕 한국인 그레잇넥 교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일보의 특별 후원하에 북한의 개성 아동병원 지원을 위한 가을 음악회를 여는 날이다. 설립된지 100년이 지나 낡을대로 낡은 아동병원을 돕는다는 뜻깊은 행사에 참여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멀리 교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붉게 물들은 가을 낙엽의 정취를 그 교회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교회 입구에는 뉴욕시가 지정하여 보호하는 이름 모를 아름드리 나무가 천년 세월을 보듬으며 꿋꿋이 서 있다. 너무 일찌감치 온 탓일까, 텅 빈 정원에는 아직 서쪽 나뭇가지에 걸린 태양빛이 눈부시다.나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그 나무 곁에 서서 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어느새 담임목사인 양 목사님이 내 곁으로 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나무 곁에 서니 무언가 느껴지는게 없으세요?”라고 묻더니 매일 교회에 편지를 배달하는 흑인 배달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가 지긋한 배달부는 본당 입구 편지함에 우편물을 집어넣고는 이 나무 밑으로 달려와 두손을 들고 천천히 나무 주위를 돌며 하루도 빠짐없이 찬송가를 부르고 떠난다는 것이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목사님이 무언가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는 “이곳이 바로 홀리 랜드입니다. 이 나무 밑에서 찬송을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확실히 느끼지요”라면서 매일 교회에 편지를 배달하는 것이 그의 큰 즐거움이라고 오히려 목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음악회는 과연 성황리에 끝이 났다. 소프라노 김은희, 바리톤 안영주 등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가슴으로 뿜어내는 오페라 아리아, 가을 노래가 그레잇넥 홀리랜드의 저녁을 수 놓았고 피아니스트 박경난씨의 쇼팽의 발라드가 깊어가는 가을의 서정을 무르익혔다. 또 서울에서 달려온 바이얼리니스트 허은무씨의 열정적인 연주와 클라리넷 주자의 감미로운 음색이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날 본당을 가득 채운 300명의 참석자들은 앞다투어 성금을 내놓았다고 들린다. 교회 사정상 임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대형 그랜드 피아노와 팜플렛 제작등에 소요되었던 필수적인 비용을 제하고도 7,000여 달러의 성금이 전달될 것이라고 한다.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난지 100년, 개성은 성령 부흥의 물결이 파도를 타고 남하하던 길목에 있는 또 하나의 홀리랜드이다. 통일을 꿈꾸며 아름다운 모금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애를 쓴 교회에 감사드리고 싶다.

또한 모금에 적극 동참하여 같은 민족의 핏줄에 대한 사랑을 나누어준 뉴욕동포들의 동포애를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이 작은 음악회를 통해 모금한 작은 정성으로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건강을 되찾는데 조금이나
마 도움이 되고 또한 그들에게 복음도 뜨겁게 전해져서 우리의 땅 개성이 거룩한 땅, 홀리랜드로 변모되는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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