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와 정치

2007-12-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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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목사/칼럼니스트)

선거 때가 되면 한 차례 화제에 오르는 문제가 ‘종교인의 정치 참여’ 혹은 ‘정치인의 종교활동’에 관한 것이다. 종교와 정치는 서로 대치되는 개념처럼 느껴지면서 사실은 분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치 지도자의 개인적 신앙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근 한국의 모 교회의 담임목사가 “이번 대선에서 장로가 대통령 되도록 기도하자”고 발언해서 언론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모 후보에게 달걀 세례를 날린 사람이 스님으로 밝혀져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종교인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질문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신정(神政)일치-제정일치(祭政一致)가 관례로 제사장(神官)이 재판장(王)의 역할을 같이 수행했었다. 사회 구조가 발달하면서 두 가지 기능이 분리되어 전문화 되어갔고, 각자의 권한은 이해관계에서 대립되면서 심한 충돌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는 두 세력의 우위 다툼으로 점철되어 있다. 중세에 들어와서 상호 타협 속에서 이른바 ‘성직(聖職)’의 우위를 인정해 주면서 ‘세속(世俗)’의 권력은 현실 정치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요즈음에 “종교인이 정치 활동하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질문은 ‘정교분리의 원칙’과 ‘종교인의 정치적 활동’이라는 두 개의 별개의 주제를 혼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우문(愚問)이다.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헌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근간이다. 미국 헌법은 그 첫 줄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고, 수정헌법 1조에도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입법을 금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도 ‘국교(國交)는 인정하지 않으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은 건국정신이 곧 ‘청교도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미국의 국교로 명시하지 않은 것은 미국의 건국 뿌리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피난민이기 때문이다. 16세기 유럽은 ‘30년 전쟁’등 종교를 이유로 한 끊임없는 전화 속에 있었다. 또한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할 때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발생하고 종교적 분열과 박해가 일어나는지 이미 역사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종교인의 정치활동의 제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고 명제의 혼란이다. 또한 ‘정치인의 종교활동 제약’으로 연결되어서도 안된다. 민주주의 헌법 아래서 모든 개인은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갖는다. 그것은 기본권이다.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생선장수가 정치적 권리를 갖듯이 어떠한 종교인의 정치적 활동이 문제가 되거나 제약받을 수 없다. 표현과 결사의 자유도 있다. 다만 특정 종교인인 자신의 종교집회, 예배 등에서 편향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비난’을 받게되는 것이 뻔한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장로인 모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 관내에 예배당을 지을까봐 벌써부터 반대하는 사람들은 걱정이란다. 그러나 그것도 어리석은 염려이다. 대통령도 공직자도 공직 이전에는 ‘엄연한’ 자신만의 종교가 있다. 공직자가 되었다고 ‘종교적 중립’이나 ‘무종교 상태’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 중에 장로였던 분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종교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은 자신의 교회에서 장로 자격 박탈을 당한 사람이 있다. 이것도 현명하지 못한 자세이다. 대통령이라도 자신만의 신앙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후보는 선거 유세 기간에 자신의 신앙관과 소속 교회를 명백히 밝히는 관례가 있다. 그것은 종파 이해를 넘어서는 자연스러운 개인의 이력사항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개인적 종교활동은 법으로 제한할 수 없다. 또한 종교인의 정치적 견해와 활동도 당연한 것이다.

가톨릭은 정치와 신앙이 일치된 모델이며, 마틴 루터와 잔 칼빈의 종교개혁도 정치적 힘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틀러의 독일 제 3제국 치하의 국가교회나 일제 하에서 신사참배를 동의한 ‘무정치파’들이야말로 정치적 맹종주의자들로서, 적극적인 정치 행태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명대사나 유관순 누나야말로 신앙과 정치가 일치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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