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구영신(送舊迎新)

2005-01-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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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시간에도 질서가 있고 세월에도 질서가 있다.일분 뒤에 이분이 오고 일년 뒤에 다음 해가 온다. 자연을 무질서의 질서라고 말하지만 자연을 차근차근히 들여다 보면 질서가 정연한 것이 자연이다.

나는 인생살이에 연습이 잘 안된 문도(門徒)에 지나지 않지만, 자연에서 질서를 많이 찾아 내 삶에 대입을 시킨다. 봄날의 아지랑이같이 졸음이 올 정도로 따스하고 정겹다가도 회오리 바람처럼 걷잡을 수 없는 노도의 성깔이 사람들 사이를 휘잡고 지나가기도 한다.


가을날 정처없이 굴러갈 낙엽이 되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사람들 무릎 아래 잠시 잠들어 보기도 한다. 모두 자연에서 배운 자연의 성격이 바로 나다.그런 나에게도 한 해가 손짓 한 번 없이 조용하게 가고, 새해가 왔다.

새해에 품는 희망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다. 건강하고, 탈 없고, 돈도 잘 벌어질 것이란 기대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희망이 누구에게나 똑같다.해마다 간절하게 품었던 그 희망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이룬 사람은 준비를 잘 해놓은 사람이고, 이루지 못한 사람은 마음에는 있어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이 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릴 줄도 알고, 기다리는 동안에 끊임없는 설계도 해야 하고, 옛 껍질에서 벗어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마지막 지점에 가서야 불빛이 되는 전신주의 배달작업, 전신주는 그걸 위해서 서 있다. 내가 전신주이고 네가 전신주이다. 하루 해가 저물면 노을은 말없이 말한다. “내 여기까지 와서 아름답게 너에게 켜는 커다란 불빛, 너는 아느냐? 천개의 바램과 만개의 간절로 여기까지 왔느니, 이루었던 이루지 못했던 간에 마지막은 아름답다는 것을!”인생의 완성이란 과정의 최선이다. 그래서 모든 것의 마지막은 그 최선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지난 한 해는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했을까? 경제였을 것이다. 아무리, 전쟁은 밖에서 하지 미국 내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미국의 정치인들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전쟁으로 어지럽다. 귀한 자식들이 전투병사가 되어 열사의 사막으로 갔으니 그의 가족 뿐만 아니라 온 나라 사람들이 걱정에 싸여있고, 전쟁의 불안과 테러들의 끊임없는 압박에 경제
마저 어려웠으니 별반 여축이 없는 이민자들은 시간을 늘려 일을 해도 좀처럼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을 것이다.

새해에는 되겠지, 새해에다 또 기대를 걸어본다. 그것이 희망인 것이다. 한 해를 살다가 새해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그 새롭다는 이름 때문에 기뻐하기도 하고 기대도 걸어본다. 사람들에게는 항상 새로운 것이 찾아온다. 새로운 것 자체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닌데 그 앞을 스쳐가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항상 새롭게 느껴진다.

커피향 보다 진한 새해의 향기, 물씬물씬 풍기는 향기가 아니더라도 한 모금의 향기로 방안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한 다발의 꽃처럼, 어제 만난 사람도, 오래 친한 사람도, 부모도 형제도 모두 새해에 놓고 새롭게 보았으면 한다.

생활이 궁핍하지 않아야 덕을 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현실 도피가 아니라 즐거운 겨울 휴가도 기쁘게 갈 마음이 생긴다. 생활인의 순서인 것이다. 새해에는 모두 열심을 다하여 옛 통장에 새로운 숫자를 늘려보자. 현대란 경제가 이름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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