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측은지심(惻隱之心)

2005-01-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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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기(롱아일랜드)

근사록에 ‘惻隱之心 人之生道也’라는 말이 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것은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요, 도가 아닐 수 없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란 성경 구절처럼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이 없다면 인면수심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가슴 아픈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 며칠 전, 스마트라 근해의 지진으로 인한 해일이 갑자기 시속 500마일의 속도로 인근 각국의 해안을 덮쳐 10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희생자의 반수 이상이 어린 아이들이라고 하니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유럽, 동남아시아, 한국 관광객들도 많은 숫자가 사망 내지 실종되어 생사를 확인할 수 조차 없다고 한다. 도처에 쌓인 시체로 인한 악취와 전염병 위협까지 겹쳐 지옥을 방불케 하고, 마실 물과 먹을 것, 입을 것도 없이 허덕이며 약품과 의료시설, 의료진도 없다고 하니 그들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하겠는가.

보도에 의하면 관계 기상청이 해일 위험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관광사업에 미칠 영향 때문에 발표를 미뤘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피해 인근국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니 복구장비도 부족하고 스스로 딛고 일어서기엔 너무나 어려운 실정인 것 같다.성경에 정의가 내린 죄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이라고 했다.
흔히 우리는 내가 적극적으로 남을 해하지 않으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국 형범에도 ‘부작위의 죄’란 것이 있는데, 내가 꼭 해야만 할 일, 즉 예를 들어 물에 빠진 자를 건질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친 죄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행함 없는 믿음, 그것은 곧
죽은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처럼 강도 만난 사람에게 말로만 위로하면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프로그램, 행사, 엄청난 예산, 으리으리한 교회 건물,
고급 차, 세미나 등등엔 아낌없이 쓰면서 불우한 이웃과 굶어가는 많은 사람들에겐 눈길 조
차 보내지 많은 교회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꼬는 <중년의 삶>에서 ‘움켜쥐지 말라 인색한 중년은 외로워질
뿐’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위스콘신에서 온 그렌 씨
반스란 G.I.가 있었다. 그가 일등병 봉급을 다 털어서 고아원엘 들러 선물을 전해주던 일들
이 나의 맘속에 깊이 사랑의 의미를 새겨 줬었다. 그는 근무하는 동안 고아원과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행동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
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인터넷을 통해 한번쯤 알아보고 싶다.
또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았다. 세월과 함께 우리도 가고 있다. 이웃에 우리는 따스함을
주고 살아왔는가, 아니면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얼마나 나의 것을
필요한 사람과 나누면서 살아왔는가, 아니면 움켜쥐고 인색하게 살아왔는가. 또 이웃에게 용
기와 격려와 칭찬을 보내면서 살아왔는가, 아니면 헐뜯고 흉보며 실망시키며 살아왔는가. 남
의 위로와 기도만 받고 남을 위한 기도엔 게을리하지 않았는가 조용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새해부터는 맺힌 것이 있으면 내가 먼저 용서를 구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사랑한다’고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큰 소리로 말하자. 오늘, 아니 이 한순간이 마지막일런지 누가 알겠는가.

피가 모자란 곳에 헌혈도 적극 나서서 하자. 헌혈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될 지언정 나쁠 것이 없고, 내가 내놓은 그 피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에 주저말고 손을 내밀자. 큰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작은 물방울이 바위도 뚫고 바다도 이룬다. 아픔을 나누려는 마음과 행동이 어느 때 보다도 귀하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걸 하고 후회할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이 사실을 깨달을 때가 나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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