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칠어지는 십대

2004-12-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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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그 날도 이전과 다름없이 디렉터와 함께 청소년들과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화 벨소리가 들려 전화를 받는데 한 청소년으로부터 온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였다.

내용은 친구 중 하나가 히스패닉계와 중국계로 구성된 30여명의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나오던 중 그 앞에서 집단폭행을 당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급히 911에 전화를 하고 청년 셋을 먼저 보내고 그리고 학교로 달려갔다.


앰블런스는 와서 아이를 응급치료 하고 있었고 쓰러진 아이들의 친구들은 사무실에서 교장과 선생님들과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해 보였다. 때린 아이들은 동네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은 그런 아이들이었고 때리는 방법이 조직폭력배들의 하는 방법처럼 제대로(?)의 매질
이라 아이의 상태는 터지고 채이고 밟히고, 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그냥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양쪽에서 팔을 잡힌 상태에서 팔목 굵기의 각목으로 머리 뒤통수를 난타 당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만약 잘못 맞았으면, 정말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선생님이 맞은 아이가 학교를 자주 빠지는 아이라며 그 아이의 결석여부를 가지고 아이를
문제아로 몰아부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 아이의 맞은 상태의 심각성 여부나 안스러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는 아랑곳 하지 않는 처사였다. 어이가 없는 나는 “학교 조금 빠진 아이라 저렇게 맞아도 된다는 것을 지금 교장과 여러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거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꺼집어내
말하는 의도는 때린 아이나 맞은 아이나 다 그렇고 그런 아이들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학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그런 말을 지금 하는거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했다.

그러자 선생은 당황하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시작했다.
실은 이 아이들은 상대방 아이들에게 계속 협박을 당해 왔고, 그래서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었던 것이었다. 맞은 아이들은 이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도 서툰 그런 아이들이라 이래저래 여러가지가 학교
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이 아이들을 우리 기관에서 4개월 전부터 학교를 빠지지 못하게 하며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때로 우리들의 무지막지한(?) 강행군도 잘 참아주며 따라주었던, 싸움도 할 줄 모르는 그런 평범한 보통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학교 몇번 빠졌다고 무조건 문제아로 몰아부쳐가며 학교는 최소한의 책임만을 지려고 하는 처사는 기가 막히다 못해 울분이 솟아
오르게 만들었다.

몇몇 한국아이들의 거칠고 예의 없는 문제 행동으로 인해 학교만 몇번 빠지면 그런 문제 아이들로 치부가 되어버리는 것이 당연시 되며 학생들로 인해 머리가 아파진 학교들의 생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학교는 거칠어지는 십대들을 보듬고 살펴주기에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실은 우리가 놀라게 되는 문제청소년의 시작도 작은 시작, 즉 잦은 학교 결석부터가 시작이다. 그러기에 학교도 무리는 아니지만 피를 흘리고 응급실로 실려가는 아이의 뒷
머리에서 아이 상태의 진심어린 염려는 뒤로 하고 문제아들의 일로만 몰아부쳐 학교의 책임만 면하려는 그런 학교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부모님이 별안간 무척이나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은 반드시 꼭 명심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아이들의 결석을 방심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많은 한인 재소자, 그들은 10년, 20년, 그리고 종신형을 살아야 하는데 그들의 시작도 실은 부모의 아차 하는 방심으로 인한 잦은 결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학교 안 가는 아이들이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그리고 6개월이 1년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게 설 자리를 잃은 아이들은 방황하지 않을 수 없고 문제아가 안될 수 없다.

자칫 방심으로 시작된 한두번의 결석은 아이들로부터 학교에 재미를 잃어버리게 만들어 부모가 학교 정문에다 내려놓으면 뒷문으로 빠져나가 1년이 지나도록 수업을 빠지는 것을 모르는 부모가 되거나 학교에서 1,2년이나 유급되었는데도 자녀가 몇 학년인지도 모르는 부모가 되기 쉽다.

그런 자녀와 부모가 한인가정에 하나 둘이 아니고 흔한 일이 되어버린 것은 우리 사회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자녀의 결석을 방심해서 학교에서 문제아로 취급당하는 것도 자녀의 결석이 유급과 자퇴, 그리고 청소년 문제아로 발전되는 것도 모두 우리 부모들과 사회의 책임이다.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로 잘못 되어가는 것을 바로 잡아 우리의 자녀들이 탈선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다른 어느 것 보다 시급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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