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스도인들의 미소

2004-12-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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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권(뉴욕동부제일교회 목사)

한국에는 옛날부터 웃음을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어른들 앞에서 함부로 웃는 것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가르쳐 왔다.

“날은 좋아 잘 웃는다마는 동남풍에 잇솔이 그슬린다”라는 속담은 웃기 잘하는 못난이라는 핀잔으로 하는 말이다. ‘치자다소(癡者多笑-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웃음은 많다)’란 말도 같은 뜻이라 할 것이다.
물론 영어에도 “A fool i known by his laughings)”라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어른들은 특히 “웃는 사람 치고 실속 있는 사람 없다”고 하여 웃기 잘 하는 사람을 ‘싱거운 사람’으로 치부해 왔다.


이러한 한국의 전통적인 관념 때문에 사회의 단면들을 풍자로써 엉뚱하게 표현한 해학(諧謔)이 한국의 웃음이라 할 것이다.
“여러 도둑들이 모여서 도둑질 해 온 물건을 나누고 있는데 가장 값비싼 물건 하나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도둑들은 저마다 이상하게 여기며 ‘우리 중에도 양심이 없는 사람이 있나 보이’라고 했다” 이것은 부패한 사회를 해학적으로 풍자한 우스개라 할 것이다.

또 이런 우스개도 있다. “거지 부자(父子)가 동네에 큰 불이 난 것을 보았다. 아들이 ‘아버지 우리는 저런 불을 만날 염려는 없지요?’ 했다. ‘이놈아 그것도 다 이 아비의 덕분인 줄 알아라’ 아버지가 말했다” 이것은 비참한 생활을 통곡하지 못해 웃음으로 중화하려는
해학이라고 할 수 있다.

웃음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늘을 향해 마음껏 웃어보는 ‘앙천대소(仰天大笑)’, 손뼉을 치며 웃는 ‘박장대소(拍掌大笑)’, 깔깔거리는 ‘가가대소(呵呵大笑)’, 모든 사람이 웃음바다를 만드는 ‘만당홍소(滿堂哄笑)’,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웃는 ‘파안대소(破顔大笑)’
이외에도 조소(嘲笑), 빈소(頻笑-미친 사람처럼 자주 웃는 웃음), 빈소(嚬笑-얼굴이 일그러지며 웃는 웃음), 첨소(諂笑-아첨하는 웃음) 고소(苦笑), 냉소(冷笑), 실소(失笑) 등이 있다.

이런 웃음들은 각각 그 특성이 다르지만 웃음 뒤에는 적막과 공허함이 따를 때가 많다.“웃음판 끝에는 의레껏 허전한 순간이 오는 법이다. 더욱이 기쁨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웃음 끝이란 가슴이 저리도록 쓸쓸해지는 것이 보통이다”(이무영 작 ‘농민’에서)참다운 기쁨에서 나오지 않는 웃음에는 ‘비꼼’이 스며있게 된다. 이러한 웃음은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난봉개구소(難逢開口笑-입을 열어 웃는 것을 보기 어렵다)’란 말처럼 웃음을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사회란 상상만 해도 삭막하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는데 청량제가 되는 웃음이 있다. ‘미소(微笑)’이다.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 있으면서 옥 밖의 빌립보 사람들을 향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다. 4장으로 되어 있는 짧은 빌립보서에서 16번이나 ‘기
뻐하라’고 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증거는 ‘기쁨’이다. 이러한 기쁨에서는 언제나 잔잔한 미소가 번져나오기 마련이다. 각박한 세태 속에서라도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 흐르는 미소는 세상 사람들
에게 작은 행복을 줄 수 있고 살 맛이 나게 할 수 있다.
“주여, 제가 죄 용서함 받았다는 확신을 항상 갖게 하여주셔서 기쁨이 충만케 하옵소서. 그리하여 2005년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로 행복을 나눌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간절한 소망으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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