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싸움은 나중에

2004-12-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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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리버티뱅크)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형이하학(形而下學)에나 폼생폼사하는 이들의 입술에 꿰달아 놓은 액세서리가 아닌 이상 모진 목숨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든 아비규환의 전란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와 언쟁을 하는 것은 돌머리들이
나 하는 짓인 것 같다.

이들 젊은 세대들은 빨갱이 소리만 들어도 과민 반응하는 육이오 세대를 과거지향적 보수 꼴통으로 폄하하며 반민족 통일 세력으로까지 매도한다.
최근 여당 의원의 과거 전력을 까발려 평지풍파를 일으킨 야당이나, 정치는 고사하고 시궁창 속 X싸움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고 ‘형만한 아우 없다’는 옛 말씀의 통념마저 무색케 하는 맏형 격의 정부 여당도 영양가 없기로는 참 난형난제이다.


부모가 자식들 싸움에서 우선 형을 질책하는 것은 나어린 아우를 위한 보호 본능 이전에 형이 누리는 기득권에 당위적 도덕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광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은 가진 자가 무시로 베풀 수 있는 혜택으로서 대통령의 특별 사면이나 야당의 의견을 수렴하는 여당의 응집된 아량 등일 것인데, 칼자루 쥔 노무현 정권이 삶은 호박에 이빨 자랑하듯 상생이니 화합이니 하지만 도대체 정치권에서 한 일이 무엇
인가.

야당이 사생결단 반대하고 있는 여론 조차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국보법 폐지를 막무가내로 밀어부치는 이유가 군사문화의 잔재 청산이고 인권 존중이라면 죽도록 배가 고파서 개똥에 박혀있는 노란 옥수수 알을 빼 먹었거나 수령님의 신년 교시를 암송하지 못했다고 수
령님 모독죄로 공개 총살하는 북한의 인권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국민 모두가 넌더리내는 그 싸움질 할 힘으로 휴전선에 몰려가서 핵개발 할 돈으로 굶어죽는 인민들 밥부터 먹이라고 데모라도 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혹자는 국보법이 폐지돼야 한다면서 북한이 변했다, 먹을 것이 없는데 무슨 전쟁을 일으키겠느냐고 하는데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인가. 아무리 사나운 짐승도 제게 밥 주는 손은 무는 법이 없는데 그들은 포악하고 교활해서 먹이 주는 손마저 물고 있다.

주는대로 다 받아 먹으면서도 간첩 남파는 기본이고 수시로 바다와 뭍을 피로 물들이는 저네들이 적화 야욕을 버렸다면 삼팔선이 장마에 떠내려 갔다는 얘긴데 소가 웃을 노릇이다.국책사업으로 마약을 밀매하는 것도 부족해서 달러를 위조하고 국수 만드는 재주인데 수제
비 못 뜨랴, 솜씨 자랑하듯 여권을 위조해서 서울에 잠입하는 것도 둔탁한 트로이의 목마가 아닌 최신예 항공기로 여봐란 듯 들어온다.

런데도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햇볕은 간첩을 잡는다는 소리나 잡았다는 소식까지 다 녹여버렸는지 잠잠하기만 하다. 어쩌다 한 번 나오는 간첩 얘기는 국가기관이 놀지 않고 간첩 색출에 노력한다는 구색맞춤이 아니라면 적어도 국방문제에서만은 태평성대란 얘긴데 얼마나 행복한 국민인가.천만의 말씀이다. “어떻게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인가” 너무 진부해서 더 이상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얘기이다.

보안법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인공기가 버젓이 서울장안에 나부끼는 판국인데 붉은 세력의 발호를 반세기 동안이나 예방하고 징치한 마지노선 마저 무너진다면 그 뒤의 혼란이야 뻔한 것이 아닌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은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전방은 전방대로 배후에는 땅굴 속에서 솟은 적, 후방 각지에는 여지껏 암약해 온 간첩들이 산지사방에서 무고한 민중을 선동하고 방화나 파괴, 또는 사상문제로 살육을 자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이야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고 공산화를 막기 위해 설혹 도와준다 해도 전후
방이 없는 전선에 어디에 대고 총을 쏠 수 있을까.
군사 상식에 문외한인 필자의 유치한 가상 시나리오지만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통일도, 개혁입법안도 좋다. 죽기 살기 국보법 폐지의 이유가 나변(那邊)에 있는가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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