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끝나지 않는 것

2004-12-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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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정신과전문의)

요즘 두 가지 큰 살인사건 때문에 미국이 떠들썩 하다. 하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임신한 자기 아내를 살인한 Scott Peterson 이라는 남자이고, 또 하나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자기 정부의 남편을 살해한 Danny Perosi라는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자기가 살해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충분한 증거를 포착한 검찰의 기소로 사형이 구형되었다.

이 두 사건의 배후에는 정부, 애인인 여자들이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10대 7명이 가출한 소녀를 처지가 비슷하다고 친구로 받아들여 같이 지내다가 집안에서 없어진 돈을 그 소녀가 훔친 것이라고 몰아부쳐 결국 때려 죽였다.


사건을 숨기기 위하여 시신을 토막내 인근 개천가에 가서 태우고 재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거의 완전범죄가 될 뻔 했다.
여기에는 돈이 개입되어 있었다.늘 돈과 여자가 문제다.
사건 후 미국의 Perosi는 자기가 살해한 남자의 아내와 3개월만에 결혼을 했고 Peterson은 자기의 애인과 즐거운 생활을 마음놓고 할 수가 잇었다. 한국의 10대 살인자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평범한 생활을 해 오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사람
을 죽이고 시체를 몰래 보이지 않게 처리하면 그것으로 일이 다 끝난 것처럼 행동해 온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다.세상에는 이처럼 끝났다고, 아니 자기가 끝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대
학교 졸업장 받으면 공부가 다 끝난 것처럼 행동한다. 사기, 절도, 강도, 강간, 살인 등 나쁜 짓 한 뒤 성당에 가서 회개하고 기도하거나 신부님한테 고해성사 바치고 나면 잘못한 죄가 다 씻어진 것처럼 행동한다. 자기 욕심 채우려고 이혼을 시작한 후 법정에서 이혼장을 받고
재산 분배가 끝나면 자기의 비행까지도 끝난 것처럼 행동한다.
과연 이런 것들이 어떤 일의 끝이 될 수가 있는가.
이제 연말이 왔다.

착찹한 기분으로 술 진탕 마시고 송년파티 하고 새해를 맞이하면 구년에 있었던 일들은 모두 끝내고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물론 일시적으로, 또 외향상으로는 끝맺음 된 것처럼 느끼고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가출소녀 토막 살해 후 불태운 일당 7명은 10년만에 잡혔다. 이렇게 오래동안 깜쪽같이 세상의 눈을 속일 수 있었던 끔찍한 범죄가 덜미를 잡히게 된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이 중 몇 사람은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취하면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내뱉었다. 양심의 가책을 나타낸 것이다.양심은 무의식의 나타남이며 무의식에는 끝이 없다. 사람의 행동이나 경험은 예외없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이나 불교 유식학에서 말하는 장식 속에 저장된다. 저장만 될 뿐 아니라 이것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현재 의식에 영향을 주고 행동을 지배하는 원동력이 된다.

윤리, 도덕심, 양심에 어긋난 짓을 하고 나면 이유 없이 불안해 진다. 잠을 자면 악몽을 꾼다.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벌을 주는 짓도 한다. 즉 사고를 일으켜 몸을 다치든지, 물질적 손실을 가져온다. 또 자기 범죄의 단서를 여기 저기 무의식적으로 남겨 놓는
다.

이래서 완전범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부, 권력, 명예, 건강, 젊음 등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이 세상에 영구히 계속되는 것은 없다. 반면 사람은 불행, 신체적 아픔, 마음의 고통, 가난, 질병, 양심의 가책 등은 빨리 끝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은 자기가 한 짓의 흔적을 없애버려도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없어지기를 바라고, 끝나기를 원하는 마음의 고통이 생기지 않도록 깨끗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기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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