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동지(Winter Solstice)

2004-12-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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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준(취재1부 차장)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는 밤/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고놈, 눈동자가 초롱같애”/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김용호 시인의 ‘눈 오는 밤에’서 묘사한 한국 전통의 겨울 날씨와 정경이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온다고 했는데 마침 뉴욕서도 동지를 하루 앞두고 눈이 내리고 기온이 크게 떨어져 가장 추운 날씨를 보였다. 역시 계절을 따지는데는 동양의 24절후가 양력 보다 적격이라 할만하다.


21일은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 동지다. 한자를 풀이하면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이며 서양에서도 ‘First Day of Winter’로 친다. ‘Solstice’는 라틴어 ‘solstitium’에서 기원하는데 태양을 뜻하는 ‘sol’과 멈춤을 의미하는 ‘-stitium’의 합성어다. 하지와 마찬가지로 동지 전후 며칠 동안 태양 고도가 일정하게 멈춘다는 뜻이다.

동짓날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쌀에 든 돌이나 이물질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복조리는 부엌 부뚜막이나 벽에 걸어 두고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동짓날에는 동지두죽, 동지시식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새알심’이라는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인 팥죽을 먹어왔다. 동지 팥죽이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 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간에 서로 나눠 먹기도 했다. 물론 옛날 이야기이고 하물며 뉴욕에서 이런 전통을 찾아보긴 힘들 것이다.

다만 고대로부터 동짓날은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여겨졌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고 흔히 ‘작은 설’로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나이만큼 새알심을 팥죽에 넣어 먹는 풍습도 이에 유래한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2004년이 불과 열흘을 남겨놓고 있다. 연말을 맞아 자칫 해이해지기 쉬운 몸과 마음을 ‘동지’의 의미를 상기하며 추슬러 아무 탈없이 보내고 힘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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