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들의 놀이문화

2004-12-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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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재미한인학교 동북부지역협의회장)

언젠가 ‘미국 속의 한국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글의 요지는 이곳 미국땅에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막중한 역할에 관한 것이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요즈음 나는 그 할머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15년 동안 뉴저지에서 맨하탄에 출퇴근하고 있는 딸애가 남매를 낳아 키우고 있다. 그와 같이 잠깐 사는 동안에 큰 손자를 조금 돌보아 준 걸 제외하고는 스패니쉬 베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출근하는 그들을 나는 외면하고 살았다.


무거운 직책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엄마를 이해하는 딸아이인지라 더 이상 엄마에게 누를 끼칠 생각은 안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직책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애를 돌봐달라는 간청을 뿌리칠 수 없어 스패니쉬 베비시터를 내보내고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힘든 공직에 머물러 있는 몸으로 이 일 저 일을 다 해야 하는 처지여서 하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흡사 전쟁을 치르면서 사는 것 같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채 스패니쉬인지 영어인지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로 종알대는 세살 된 손녀와 학교에서 오기가 바쁘게 TV와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는 여섯살 난 손자 녀석을 더 이상 방치해 두었다가는 큰일 날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늦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생각으로 요즈음 나는 아이들의 생활 습관을 바르게 잡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 오자 마자 목욕시키고 간식을 만들어 먹이는 일, 그리고 숙제를 제일 먼저 하게 하는 일, TV 보고 컴퓨터 하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더 읽게 하는 일, 이 모든 일들이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다.

다행히 애들을 돌본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세 살 짜리 손녀가 네 살이 되어 프리스쿨에 다니면서 우리말을 조금씩 할 줄 알게 되고, 일곱살이 된 손자는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영어 독해력을 중심으로 모든 과목 성적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의 자녀들이 자라던 시절만 해도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남자 아이는 구슬치기, 딱지치기, 계급장 따먹기, 여자아이들은 고무줄 놀이, 공기놀이, 땅 따먹기, 돌차기, 오자미(모래주머니), 삼팔선 등 셀 수 없는 놀이들이 무성하였다.

아들 녀석이 어렸을 때 어떻게나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잘 했던지 이 때 이 아이는 놀이를 통해 산수의 덧셈 뺄셈에 도를 터서 학교의 산수 실력도 빼어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놀이나 운동을 잘 하는 아이는 틀림없이 공부도 잘 하였으니까.요즈음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TV와 컴퓨터, 그리고 각종 게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손과 발, 그리고 온 몸을 놀리고 머리를 굴려서 하는 옛날의 놀이와는 너무 판이하다. 머리와 자판 두둘기는 기능만 발달하게 하는 것일까.

물론 컴퓨터 시대, 미디어 시대, IT산업시대를 살아가는데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기능을 길러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와 내 자녀가 살던 시대와 지금 시대의 놀이문화의 엄청난 공간이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지능과 신체를 고르게 발달시키고 인격을 형성하는데 이 놀이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 알고 있기에 더 무서운 것이다.

나는 예쁜 작은 돌멩이 다섯개를 골라서 공기놀이의 공기를 만들어 놓고 이 아이들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고 오자미를 만들어서 오자미 놀이도 함께 한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신기해 하면서 놀이를 같이 즐긴다. 앞으로도 옛날 놀이를 재현시킬 수 있는 것은 살려보도록 애쓸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지금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손자 손녀들의 모습에서 그 때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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