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운사 동백꽃

2004-1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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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선운사 담장 너머 뒷동산 숲은 동백나무로 가득 차 있다. 선운사 동백숲, 이 동백나무들은 선운사 절간을 버릇없이 사시사철 내려다 보고 있다가, 선운사 주변의 상사화가 지고나면 동백은 슬슬 빨간색의 연지를 준비한다.

동백꽃이 피면 입술이 새빨간 동백꽃은 아름답기가 음흉스럽다. 그리고 시끄럽다. 원래 유혹하는 쪽의 눈빛이 강렬하고, 짝이 있는 사람보다는 짝이 없는 사람이 시끄러운 법이다. 담 너머 스님을 내려다보는 동백의 뜨거운 눈빛이 요상하기도 하고, 그런 동백을 한참 바라보
고 있으면 그 자태가 음흉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한반도의 동백나무는 남쪽으로 갈수록 많아서, 제주도나 울릉도, 그리고 여수의 오동도가 동백꽃 하나로 그 이름을 하늘높이 휘날리면서 관광객을 부르며 몸을 꼬지만 그 꽃색깔이 선운사 동백꽃만은 못하다.
남쪽에서 윗쪽으로 북상하던 동백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봇짐을 내려놓는 곳이 선운사 뒷산이다.

한반도에서 선운사 윗쪽으로는 자생하는 동백나무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 상한선. 그러니 다 간 길에 판소리나 육자배기 한 가락 입에 물고 치마자락 너울이
며 님을 부르다가 끝내는 원망을 하고 만다.라는 듯한 그 색깔 하며 소리없는 그 애절한 붉은 소리가 상처난 피부를 핥고 가는 선혈같이 요란하고 목이 쉰 소리다.

가뜩이나 봄바람에 설레이는 남도의 사오월인데, 거기에다 동백꽃이 피는 날이면 선운사 동백숲은 조용하고 편안한 스님들의 마음을 들쭉날쭉 흔들어대면서 괜한 참견을 서슴없이 한다. 의상대사의 불심을 사랑이란 묘한 얼굴로 흔들어대던 선묘와 다를 바 없다.

선운사 동백숲은 그 나이가 오백년은 족히 넘었다고 하니 선운사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연중행사 앞에서, 스님들은 이런 것이 인생에서 반복되는 유혹인가 보다 하고 그냥 웃으면서 넘겨버리는 여유를 무릎이 까지는 오랜 득도의 수행길에서 터득했을까?

나도, 선운산 산봉우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걸터앉은 석양 한자락을 머리에 이고 스님들처럼 중얼거려 보았다. 무엇엔가 취해서 중얼거리는 나의 내용을 내가 모르는데도 그 더듬거리가 꽤는 장하게 느껴졌다.
아! 절간에서 하는 소리는 모두가 그런가 보지, 되도록이면 더 작은 소리로 엄숙하게 뇌까
리는 중얼거림, 기특하게도 신성하기까지도 하다. 그러니 절간은 조용하고 동백꽃의 요사스
러운 눈흘김이 요란한 거지…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동백꽃을 좋아한다.

특히 사랑이 제대로 배달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동백나무 진초록 잎새에 어울리지 않는 진붉은 색깔의 동백꽃잎이 사람마다 저라고 말하고 싶었을 게다. 사랑하는 마음에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배달이 잘 되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흥분이 날라다니는 들뜬 표정으로 선운사 뒷뜰에 서 있지는 않을 사람들. 너도 거기에 있었고 나도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일찌감치 마당도 거기에서 마음을 저리고 있었다.

“선운사 골짜기로/선운사 동백꽃을/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막걸리집 여자의/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미당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내가 동백꽃을 좋아하는 까닭이 있다.

동백꽃은 보기싫게 시들어버린 다음에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개한 꽃잎에 더할 나위 없는 붉은 색깔의 마지막 배달이 끝나면 청춘이 자살하듯 생생한 얼굴 그대로에다 어찌할 수 없는 이글거리는 눈을 뜨고 땅에 떨어진다.나는 그것이 좋았다. 갑오 농민전쟁을 이끌던 녹두장수가 그래서 그렇게 갔나 보다. 나는 그것이 또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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