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혼이 해결책이 아니다

2004-1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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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박(법학박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혼은 한 동네에 간혹 있거나 옛 동창생들 가운데서도 하나 있거나 말거나 한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었고 ‘쉬쉬’ 소리를 하던 것이 이혼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을 나 보라는 듯이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보도에 의하면 직계가족에 이런 일이 거의 다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은 남의 이혼을 알리는 소식은 흥미롭게 전해진다. 별 수 없구나 하듯이 속마음에 깔린 한구석에는 ‘꽁찌는 면했구나’하는 식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보지 않았던 거만한 그 집도 집안싸움을 하고 별 수 없구나 하는 식이다. 한 마디로 남의 눈이 무
서워서 하는 변명은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참고 견딘다’는 식의 자기 만족의 표현이다.
서로 사랑을 하고 훗날을 기약하고 서로 한시도 떨어져서는 못살 것 같고 자나깨나 곁에 있고 싶고 마냥 좋아만 보이던 부부가 어느새 ‘그저 그렇군’하는 사이로 바뀐다. 최희준의 노랫말처럼 아내가 호랑이로 변하면서 귀찮다 못해 무슨 전생의 웬수냐 하는 관계가 돼 버
린다. 그리고는 봄 들판에 앉아 둘이서 손잡고 바라보는 봄날의 그 호수는 어느새 살얼음판이 돼 버린다.

그 후로는 사사건건이 문제로 떠오른다. 전 같으면 처가집 대들보를 보고도 큰 절을 할만치 좋았던 사이, 그가 이제는 천만의 말씀이다.
차츰 인생의 한계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자녀들도 이제는 언제 그랬
냐는듯 그게 아니다. 제각기 바쁘다고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하며 외면하고 말끝마다 따지기
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차츰 처해진 자기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 이민온 여자들의 경우는 생계 유지의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하고 남자인 경우에는 여
자의 필요성이 점점 적어지면서 쌍방간에 필요도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마지못해 살았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강 건너 산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끝내는 절망하는 심정으로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이럴 때 정작 결혼을 깨야 할 정말 어려운 일이 있나 없나를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좋은 점과 나쁜점은 서로간에 다 있고 또 다 안다고 하더라도 정말 좋지 않은가, 아주 나쁜가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세상에 아주 좋은 것이란 있을 수가 없고 아주 나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점차 묽어지는 것이어서 좋은줄을 모르게 무감각하게 된다. 나쁜 것은 세월이 약이 되어 추억으로 밀려가며 추억은 괴로움을 걸러내어 아름다움만 남게 된다.

무더운 날 첫잔의 시원한 물 맛을 어떻게 둘째 잔에서도 느끼겠는가. 찻잔의 냉수 맛은 두번 다시 맛볼 수 없는 것이다.이혼은 법적으로 말하면 한 마디로 결혼의 해체인데 어째서 결혼이 어려운 것일까? 논리적
으로 말하면 결혼의 장단점과 이혼의 장단점은 역 도 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혼의 단점이 이혼의 장점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결혼의 단점은 수없이 많다. 그러면 그것이 전부 이혼을 해야 하는 장점이 될 것인가. 결혼의 단점은 이혼을 함으로써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단점이라는 것은 좋지 않은 점과 아주 나쁜 점의 통합적인 규정이며 장점이라는 것은 정말 좋은 것과 나쁘지 않다는 것의 복합된 표현이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지겹고 남은 인생이 잘해야 본전이라는 판단이라면 이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매일 예쁜 드레스나 입고 파티만 할줄 알았던 이민의 꿈의 불만이라면 냉수 먹고 하루빨리 정신차려야 될 것이다.

인생은 욕구 불만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욕구 불만이 하나씩 성취되는 것이 인생의 맛이요 꿀인 것이다. 현재의 고통이 훗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을 미리 알고 참으면 그 해답을 알 것이다. 인생의 맛은 바로 수학에서 말하는 탄젠트 시타, 즉 높이가 아니고 올라가는 각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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