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큰 스님의 다비식에 다녀와서

2004-12-15 (수)
크게 작게
강자구(전 스토니브룩 한국학회 회장)

스님은 禪僧이셨다. 아아! 우뢰같은 소리로 고함을 치셨다. 이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나는 모른다!(don’t know mind)고 하셨다.
내가 스님을 처음 뵈올 때는 1978년 추운 동짓달, 금요일 저녁이었다. 이동식 박사의 권유로…

다음날 토요일 저녁부터 정식으로 ‘화두’를 받고 미국인들과 같이 호된 선문(禪門)에 들어서게 되었다. 스님께선 “선문에 들어온 이상 ‘안다는(知) 것’을 버려라. 그리고 오직 화두만을 생각하라” 이 말씀 뿐이셨다. 그리고 나는 밤낮 없이 화두를 들었다.


어느날 새벽 예불 종소리에 나는 앞이 확 트이는 엄청난 기쁨, 그리고 댕댕댕… 하는 새벽 종소리는 온누리를 뒤엎을 만큼 크게 몇달간이나 계속 계속 들렸다. 이 사건 때문에 스님과의 독대에선 호된 검증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느닷없이 스님이 방석을 내게 확 던지셨다. 나는 얼떨결에 받아서 깔고 앉아 버렸다. 이렇게 하여 스님과 나의 이 세상 인연이 끈질기게 이어지면서 나는 드디어 스님의 ‘다비식’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

다비식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미국과 유럽을 위시하여 제자들이 500여명이나 모이고 하늘도 무심치 않아 가랑비를 대지에 뿌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기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다비식’이 무엇이요? 나의 답, ‘다비식(큰스님의)은 망자(죽은 사람)가 산 사람들을 가르치는 불교의 한 법식(의식)이요. 기자가 묻기를 다시 어떻게 그렇습니까? 나의 답, 자! 잘 보시요. 큰스님은 지금도 중생들에게 ‘인연법’
을 가르치고 계시요. 그게 무슨 뜻이요?

기자는 집요하게 물어왔다. 저기를 보시요! 스님은 이 세상에 ‘인연’으로 와서 그 인연이 끝나서 큰스님의 법구(法具)는 불에 타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인연으로 왔다가 인연이 끝나면 또 다른 인연으로 연결되는 것이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요? 생물과 무생물도 한 번 태어나면 인연 따라 살다가 또 다음 인연으로 가는 것이요. 이것을 인연법이라 하지요. 또 이 인연법은 이 세상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쌓은 분은 다음 인연이 물론 좋은 곳으로 연결이 되지 않겠소. 그러니 큰
스님은 언젠가 어디선가에서 다시 환생하시겠지요. 이것을 ‘윤회’라고 하지요.

그 기자는 내 말에 재미있는 듯 “당신은 어떻게 그리 소상히 아시요?” 나의 답, 여보시요, 기자 양반, 저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어보시요. 물(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질 못하면 고이고 있다가 다시 흐르게 되면 또 흐르지요, 라고 법문을 하지 않소. 또 저 큰 노송(松)의 가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들어보시요. “나는(바람) 바람 부는대로 불고 억지로 불지 않는다”고, 법문 이런 주위의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다 큰스님의 법문이요, 큰스님의 법구(육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수덕사 주위에 뿌려져 계시지만 우리들의 마음만 열면 우리가 어디에 있던간에, 무엇을 하든간에 큰스님의 명법문(名法文)은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 것이요.

아악! 이 소리가 몇 근(무게)이나 되느냐 묻고 계시는구나! 이 소식을 알면(깨치면) 내가(큰스님) 있는 곳을 알리라!오후 1시 반, 배가 출출하다. 나누어주는 점심 도시락이나 먹어야 겠다. 가랑비는 우장을 통
하여 내 옷을 촉촉히 적시는구나!다비장에서 내려오는 황토길 오솔길에 수많은 발자국으로 진흙탕이 되었으니 ‘인산인해’를 이룬 조문객들의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겠구나. <활인 합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