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65일의 소중한 축복

2004-12-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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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뉴욕신광교회)

커튼을 여니 투명한 유리를 뚫고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팽팽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는 토요일, 이 화사한 겨울날 아침의 여유로움에 나를 둘러싼 테두리가 문득 낯설게 다가서며 평화로움을 안겨준다. 색색 단풍으로 가득했던 창밖 풍경은 어느새 세월의 무게에 못이겨 모두 벗어버린 앙상한 나무가지들로 한껏 쓸쓸해 보인다.

창안에는 계절에 관계 없이 화초를 좋아하는 남편의 오랜 벗들이 제각기 특유의 모양과 빛깔로 사시사철 피고 진다. 만개한 난꽃을 시샘이나 하듯 제 철을 잊은 크리스마스 선인장도 가지 가득 연지빛 꽃망울을 터뜨리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평화로운 이 아침의 작은 행복은 이미 오래 전 나를 위해 마련해 놓은 창조주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이렇게 시시때때로 안겨오는 작고 소중한 축복에 감사드리며 나나모스꼬리의 사랑의 기쁨을 커피향 속에 가득 채워 본다.

이런 시간에는 아주 천천히 작동하는 초침의 시계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솜사탕 같은 초겨울 날의 달콤한 휴식을 아껴가며 조금씩 입 안 가득 음미해 본다.또 하나의 새 아침은 뜰에 배달된 신문을 주워 들고 밤새 닫혀있던 세상을 열어보는 일이다. 하루 사이에도 헤아릴 수 없이 재현된 동산 밖의 죄악이 까맣게 부끄럼 없이 쏟아져 나온다. 오염된 세상 앞에 부가된 전쟁과 죽음의 고통을 보며 내 아이들의 미래가 공연스레 걱정이 된다.

두려움과 상처로 뜯겨진 지구촌을 마주하며 나이에 비례하는 나약함과 곰살스러움으로 졸아드는 두 어깨는 어쩔 수 없다.그러나 세상이 어찌 괴로움 뿐이겠는가. 한편에서는 일년의 마지막 달을 선행으로 마감하려는 각개 단체의 훈훈한 온정의 모닥불이 지펴지고 있다. 땅덩어리가 커서일까 더 허하고 더 추운 이곳 곳곳에서 어려운 경제지수에도 불구하고 행해지는 사랑의 실천 기사를 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조금 전의 나의 걱정처럼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고 희망을 가져본다.

조국에는 얼마 전에 사랑의 체감온도 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 탑은 섭씨 0도에서 출발해서 이웃돕기 성금이 모일 때마다 눈금이 섭씨 100도를 향해 올라간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사랑의 체감온도를 높여야 할 계절인 것 같다.

연말 연시의 북적이는 명절 분위기로 더 외로워지고 헤어져 있는 가족들이 더 그리워해야 하는 내 이웃에게도 훈훈한 모닥불이 밝혀지길 기도 드린다.

하늘의 권세 모두 버리고 가장 친한 모습으로 생명까지 내어주신 참사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성탄절을 맞아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 본다. 365일 나의 삶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소중한 축복을 거져 받아 누린 나는 무엇으로 감사를 드렸는가? 내게 주신 행복한 평화와 자유 앞에 나의 인색한 두 손을 모아 본다. 값 없이 거져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 나 또한 내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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