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총성 없는 전쟁

2004-12-09 (목)
크게 작게
이기영(주필)

소매 백화점인 시어즈 로벅은 한 때 미국의 소매업계를 석권한 왕자로 군림했다. 1886년에 창업한 이 회사는 메일오더 비즈니스에 집중하여 당시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몽고메리 워드를 물리치고 패권을 차지했다.

1973년 시카고에 세워진 시어즈 타워는 높이 110층, 1,450피트로 1996년 말레이지아의 페트로나스 타워가 세워질 때까지 세계 최고의 빌딩으로 위용을 자랑했다. 특히 공구나 가전제품 등 시어즈 제품은 견고하고 실용적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1950년대에 소련의 후르시초프 수상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에게 미국을 설명하는 대신에 시어즈 캐털로그르를 주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 시어즈 회사가 얼마 전 K마트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시어즈와 함께 한때 미국의 4대 소매업체에 들었던 K마트는 경영부진과 수지 악화로 2년 전 도산 위기에 몰렸는데 덩치가 2배나 되는 시어즈를 인수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내막적으로는 K마트가 시어즈를 산 것이 아니라 K마트를 산 대주주가 또 시어즈를 사서 두 회사를 지배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미국 소매업체의 흥망성쇠는 그 뿐이 아니다. 시어즈, K마트와 함께 소매업계를 주름잡던 울워쓰는 1879년 펜실베니아의 랭커스트에서 5센츠, 10센츠 가게로 출발하여 1913년 뉴욕 맨하탄의 시청앞에 고딕 건축으로 유명한 울워쓰 타워를 세웠으나 지금은 점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울워쓰 타워마저 1998년 부동산 회사에 팔렸다. 지금 미국의 소매업계에서는
1962년 아칸소에서 소매점으로 출발한 월마트가 이 모든 소매업체들을 평정하고 왕자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걸친 다국적 기업으로 연매상 2,560억달러이며 연간 순익만 91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소매업계 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가 이와 같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신기술의 혁신이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는 제조업의 경쟁도 그 만큼 치열하다.

1980년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급성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금융업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은행의 서열이 뒤바뀌기 일쑤이고 인수합병이 쉴 새 없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비즈니스의 경쟁은 한 마디로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기면 업계를 석권하고 지
면 망하게 된다.

전쟁에서 지면 생명과 재산 뿐 아니라 국가마저 존립할 수 없게 되듯이 사업에서 지면 돈을 잃고 기업이 망하고 심지어 개인과 가정의 파멸까지 초래한다.사업과 전쟁이 같은 점은 전투와 경영의 요소가 비슷한 점에서도 볼 수 있다. 전쟁과 전투의 주체인 군의 편제를 보면 지휘관 아래에 인사, 정보, 작전, 군수 분야로 나눠진다.

사업에서도 CEO가 기업을 경영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첫째, 좋은 인력을 확보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고 둘째, 시장 추세와 경쟁업체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고 셋째, 이에 맞는 생산 및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하고 넷째,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여 기업 활동을 뒷바침해야 하는 것이다.

또 전쟁을 할 때 좋은 입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데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영국군이 구릉지역을 먼저 차지하여 진을 쳤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날씨도 매우 중요한데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러시아 침공에서 모두 실패한 것은 혹한의 날씨 때문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사업에서 입지는 좋은 위치, 예를 들어 소매상의 가게 위치가 될
수 있고 날씨는 경제여건, 예를 들면 불경기나 호경기 등이 될 수 있다.
이런 기업 전쟁은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한인들이 많이 하고 있는 모든 소기업이 똑같은 전쟁을 하고 있다. 사업에는 전쟁처럼 모든 가용한 수단이 종합적으로 동원되는데 그 결과는 전쟁처럼 승리를 해야지 지고 나서 변명해도 소용 없다. 그러므로 잘 나가는 기업이라고 방심해서는 안되고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여 결코 낙심하여 좌절할 일도 아니다.

시어즈가 물러가고 월마트가 군림하는 세상이다. 한인들은 경기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이 총성 없는 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