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인생의 꽃

2004-12-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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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어느덧 연말이다. 그야말로 세월은 화살같이 지나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새해가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2월이라니... 이런 생각은 해마다 아쉬움과 더불어 연례행사처럼 떠오른다. 이맘때가 되면 늘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또 새해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고
민케 된다.

연말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진단하고 생각해봐야 하는 시기이다. 더구나 나이든 사람에게 연말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는 한해가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길지도 모르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는 한해가 가면 갈수록 그 길이
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한 해는 어떤 희망을 갖고 일을 성취해나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만 나이든 사람에게는 시간이 너무 짧아 뭘 좀 해보려고 해도 이루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일수록 하루를, 아니면 한 해를 그냥 덧없이 보낸 것 같아 대부분 연말이 되면 더욱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지난 것을 보면 한해를 모두들 다 다르게 보냈다. 그러나 돌아보면 결국 다 같은 공통점이 있다. 무엇을 했든 간에 한해를 소비했
다는 것과 결과 이전에 누구든지 뭘 하기 위해 버둥거리며 달려 왔다는 사실이다.

부지런히 그렇게 살다 보니 연말이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과거 성현들은 말하기를 ‘허무한 것이 인생이고 세월’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면 사실 인생은 살맛을 못 느낀다. 그런 허무 속에서 그래도 인간은 모두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고 이런 저런 모습으로 애를 쓰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꽃의 이름이 바로 인생의 꽃이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자기의 독특한 인생의 꽃을 피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럼으로써 인류가 미래를 향해 살아나가는 힘이 생겨 더욱 의미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걸 생각하면 반드시 세월 가는 게 허무하고 우리 인생이 허탈한 것만은 아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버둥거리는 것이어서 오히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숭고하다.

올 한해도 모두 시간을 열심히 소비하고 노력을 많이 한 대가로 사람마다 크고 작은 결실을 거두었다. 실패든, 성공이든, 모두가 우리에게는 소중한 결실이다. 아직 채 열매가 맺어지지 않은 것이라도 그동안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으니 지금 상태에서 일단은 만족해야 할 일이다.

올해는 이런데 내년에는 또 무슨 꽃을 어떤 형태로 피울까, 아니면 올해 피운 꽃을 내년에는 또 얼마나 키울까 지금 이 12월은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새해를 설계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한 해가 지나고 연말이 되고 보면 항상 모든 게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은 게 사실이다. 자신이 걸어온 한 해에 만족하거나 흡족해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 이렇게 밖에 못했을까’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들을 갖게 마련이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까지는 트리와 화려한 장식등이 근사해 보이나 그 것이 다 지나고 난 다음에는 달리 보이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똑같은 트리인데 시작 때는 말할 수 없이 그 모습과 분위기가 화려하고 웅장하나 끝나고 나면 너무도 초라하고 쓸쓸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 해의 끝머리에서 가져지는 감정이 아닐까. 크리스마스 때
화려한 등이 다음날 보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감정, 세월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연말이 되니 모두들 착잡하다고 말한다. 올해는 잔뜩 잘 할려고 마음먹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매우 후회스럽고 초조하다는 것이다. 문학에서는 퍼렇던 하늘이 저녁때가 되면 벌겋게 되는 것을 마치 인생살이와 같다고 본다. 만일 우리에게 해가 떠오르면 지고, 지는 해가 다시 떠오르는 확신과 희망이 없다면 연말은 절망이요, 혼돈이요, 처절하기만 할 것이다. 다행히 희망은 오히려 이런 속에 있기에 우리는 또 살맛이 나고 한해를 잘 마무리할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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