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딸 시집보내기 두려운 아버지

2004-12-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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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 교사)

1925년 미국이 본격적으로 물질적 번영에 들어서는 길목에 서 있을 때 작가 데오도르 드라이저는 소설 ‘한 미국인의 비극’을 써서 당시 젊은이들의 삶의 현실과 그들이 갖는 미국 꿈 실현의 또 다른 어두운 뒷면을 미국인에 알렸다.

제대로 받은 교육은 물론 습득한 기술도 없이 별볼일 없는 시골의 가난한 한 청년이 값싼 열정과 필사적 몸부림으로 부귀와 상류사회의 아름다운 여인을 함께 소유해 보려는 욕정에 눈이 어두워 이미 임신케 한 공장 동료 여인을 죽게 방치함으로써 자신의 세계까지도 버리게 된 엉성한 젊은이의 꿈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은 작가가 오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목격한
실제 있었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의 익사를 살인죄로 기소한 검사에게 그녀 자신의 부주의로 배가 전복되어 익사했다는 청년의 변명은 모두를 침묵하게 한다. 이 소설은 ‘A Place in the Sun’이란 새로운 제목이 붙여져 영화화 되어 한국에서도 상영되면서 꿈은 크나 암담했던 6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필자나 동년배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시골의 보잘 것 없는 한 비료 외판사원인 스캇 피터슨은 임신한 아내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수사가 자기에게로 좁혀 오자 본래의 자신과는 다른 얼굴 모습을 하고 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돼 법정에 서게 됐다. 아름다운 자태가 사라진 임신한 아내를 가진 그
가 부랑자가 되어 밤거리를 헤매다 만난 금발 미인을 가까이 하면서 저지른 살인범죄 재판은 테러와의 전쟁과 대선의 와중에서도 미국인들의 큰 관심사였다.

배심원들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는 날 법정 밖에서 지켜보던 희생자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울릴 수 없는 새로운 여인에게 이성을 잃어 독신자 행세하며 비열함과 거짓말로 속여 결혼을 약속하고 그 목적을 위해 임신한 아내를 죽여 추를 매달아 바다에 내다버린 몰지각한 사나이의 운명은 이제 배심원들의 손에 달렸지만 죽은 아내와 태어나보지도 못한 생명에 대해 정작 본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남자는 태어날 때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한 가지 이상, 천부적 재능을 갖고 나오고 그것을 키워 팔아먹고 살아간다. 본능과도 같은 출세욕과 미인을 반려자로 맞으려는 욕정의 결실은 그 재질을 키운 결과에 대한 보상이지 얼간이들이 누려야 할 급부가 아니다.

노력보다 욕망이 앞서는 젊은이가 경이적은 삶을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다 저지르는 범죄가 법망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불성실한 자세와 정직하지 못한 생활에 안주하는 젊은이가 허황된 꿈을 갖는 것은 자칫 자신을 짓눌러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때로 마약에까지 손을 대면서 귀중한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로 보내는 신랑감들을 주위에서 보게 될 때면 커리어를 위해 결혼을 늦추는 딸에게 밀어부치기만 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또 그들의 이혼율은 어떻고. 딴에는 성공했다고 믿는 딸에게 이제는 때도 됐으니 결혼을 강하게 권유해 보지만 딸 시집 보내기를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고민은 이만 저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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