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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번호 매기는 사회”

2024-11-12 (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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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의 대명사였던 다윗의 변질은 그가 통일 이스라엘의 군주로 등극한 후 실시한 인구조사 때 나타났다. 하나님이 금한 인구조사(서열화 작업)로 인해 다윗의 겸허는 여리고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다윗의 위대함은 번호 매기는 관료적 욕망 때문에 순간에 와해되었다. 앤디 그로브(Andy Grove)는 인텔의 전설적인 CEO다. 그는 모든 평직원과 함께 칸막이를 한 좁은 공간을 집무실로 쓰며, 회사 주차장에 CEO 자리를 따로 지정해 두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인텔의 지정석 없는 주차정책은 번호 매기는 사회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 (로버트 풀러의 ‘Somebodies and Nobodies' 중에서)

서울 강서구 주민들이 공청회를 열어 특수학교(장애자를 위한 공립학교) 설립을 반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 지역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 서열이 하락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학군 서열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되는 국립 한방의료원 유치는 대 환영이지만 특수학교 설립은 결사반대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번호 매기는 사회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서열화 된 사회는 사회적 단절을 일으킨다. 낮은 공동체 지수를 형성한다. 한국의 공동체 지수가 OECD 34개 국가 중 33위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강서구 비대위 주민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는 자치구가 8개나 되는데 왜 강서구에 두 개를 세우냐. 이 동네엔 장애인복지관이나 노인정 등 복지시설이 이미 많다.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도 많은데 그런 시설이 또 들어오면 어쩌란 말이냐, 강서구는 허준이 태어 난 곳으로 주민 비대위는 특수학교보다는 국립한방병원 유치를 희망한다.”

최고의 학군, 최고의 아파트 가격을 자랑하는 동네로 만들기 위한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설립 반대토론회’는 전국적인 여론에 굴복하여 결국 무산되었다. 하지만 한 동안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강서구 주민의 일치단결했던 지역 공리주의는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다.

젊은 시절의 다윗은 고매한 인격과 남다른 신앙심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백성에겐 칭송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12지파를 대표하는 절대 군주로 등극한 후부터 다윗의 변질은 시작되었다.

국민을 서열화하고 번호 매기는 관료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인구조사 정책이 다윗의 변질의 근본 원인이다. 하나님이 금한 인구조사로 인해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신뢰는 금이 갔다. 이때부터 다윗의 왕정은 심하게 흔들렸다. 다윗의 만년은 석연치 않은 사연을 지닌 채 내란과 가정 파탄을 겪으면서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마틴 부버는 말했다. “인간에겐 두 종류의 관계가 있다.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다. ‘나-너’의 관계는 인격과 사랑의 관계이고, ’나-그것‘의 관계는 거래와 이익추구의 관계이다. 인간관계의 비극은 ’나-너‘의 관계를 잃는 것에서 비롯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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