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에세이] 권태와 자유

2025-07-02 (수) 08:20:25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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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아일랜드에 위치한 포트 워싱턴의 물가는 햇빛이 넘실대는 윤슬을 바라보는 게 좋아 가끔 찾는 곳이다.
큰 아이가 샌디에고로 이사 가며 엄마가 곁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 주일 있었던 휴양지에는 툭 트인 바다가 왠지 공허함과 고독으로 다가왔고 계속되는 단조로움은 권태를 오게 했다. 순간 오래전 읽었던 벽촌의 여름날 권태로움을 쓴 “이상”의 글이 떠올랐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보는 초록색 풀과 푸르른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우리 만치 간절한 자연 속 소박한 것들도 매일 보면 권태를 느낄 수 있을 거다.
개들조차 짖지 않고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단절의 불편함과 도시의 삶을 모르니 주어진 환경만이 전부인 줄 알고 땡볕에서도 잘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편안함보다 지루했던 것이다.


나 역시 바쁜 일상을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자 떠난 간절히 바랐던 휴양지임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움이 왔다.
둘째 아들이 “엄마”라는 직업에서 은퇴하라던 말이 떠올랐다.
오롯이 자식만 보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그들에게 매달리듯 살아가는 건 아닌듯했고 해방감 혹은 자유스러움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휴양지라 해도 36년 살아온 뉴욕을 떠나 낮선 곳에서 다시 정착하는 게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아 몇 개월 고심하다가 그냥 뉴욕 산다고 선언했다.
육십이 넘어 바쁜 삶에도 남들과의 소통에서 점점 권태로워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소통은 자연을 벗 삼아 대화하며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으며 살아야 얻어지는 것같다.

내일의 희망과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게 기대할 것 없는 삶의 무게가 오기도 한다. 시골의 소박함에서 위로를 받고 큰 환상의 나래를 펴고 가는 힐링의 장소가 권태로움이 오는 것도 방랑객이 안고 가야 할 몫이다.

뉴욕 생활은 바쁘게 살아온 시간에 익숙하지만 단조로우면서 지치고 고독이 길다. 특히 남들보다 더 잘났다는 말투과 의식속에서 평가하는 영혼 없는 편협한 사고방식, 불신이나 불협화음에서 오는 지루함은 소통하기 힘들다.

사람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의 신비감이 없고 감정상의 소통이 없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에 익숙한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인간관계에서 변함은 없어도 변화는 있어야 한다.

인기를 얻는 연예인들에게 관심 두고 미모 지상주의가 우리를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일까? 심심하면 못 견디는 사람들의 습성이 남의 이야기로 가십거리를 만들어도 못 들은 척 귀 막고 모든 걸 긍정적으로만 보는 쉬운 마음이 더 편한 것일까?

사람 관계에도 소통이 되고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알고 배려가 깊고 소중함을 간직하는 사람에겐 진심을 보여주며 살아야 한다.

“불편한 진실에서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는 니체의 말처럼 자유라는 건 반복되는 버거움과 단조로움 속에서도 익숙함에 소홀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며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때 얻어지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권태로울때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는 이야기다.

권태로움이 올 때 자신을 돌아보고 지루한 삶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니 평온함으로 반복되는 흐름에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도 한다.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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