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참나무의 해거리 전략’

2025-07-01 (화) 08:28:45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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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에는 열매를 아주 적게 맺고 어느 해에는 많이 맺는 생산량 조절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현상을 해거리(alternate bearing)라고 한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주식이다.

참나무에게 도토리는 종족을 번식시키는 종자(種子)다. 참나무는 자신의 소중한 종자 씨앗을 무료로 가져가는 다람쥐의 포식행위를 향해 ‘해거리 전략’을 구사하여 다람쥐의 개체를 통제한다.

어느 해에 참나무는 갑자기 도토리를 많이 맺어 다람쥐에게 풍성한 도토리를 선사한다. 영양 섭취가 많아지면서 다람쥐의 개체 수는 급증한다. 그 다음 해에 참나무는 도토리 생산을 대폭 줄인다.


다람쥐들은 제한된 양식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다수가 영양결핍으로 쓰러진다. 결국 다람쥐의 개체 수는 평년 수준으로 돌아가고 참나무 군락은 안정을 되찾는다.”(더글러스 테러미의 ‘The Nature Of Oaks' 중에서)

참나무(Oaks)는 견실한 군집번식을 위해 도토리를 최대한 많이 생산하여 널리 퍼트린다. 하지만 참나무가 생산한 도토리가 다람쥐에게 가로막혀 다 빼앗기면 참나무 군집은 불안하다. 이때 참나무는 해거리 전략으로 다람쥐와 맞선다.

사방에 널려있는 도토리를 아무 노력이나 대가도 없이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방관하는 것은 참나무만의 생존전략 중 하나다. 이것을 ‘포식자 포만전략(predator satiation strategy)’이라고 한다. 참나무의 포식자 포만전략은 숲 속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적 다람쥐 군집을 일시에 배불리 먹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토리 풍작이 지나간 후 그 다음해가 되면 참나무는 돌연 도토리 생산을 줄인다.

다람쥐의 주식인 도토리의 생산이 고갈되면 다람쥐는 참나무 해충인 매미나방 번데기, 애벌레를 잡아먹으면서 연명한다. 그래도 양식이 모자라면 적은 양식을 앞에 놓고 치열하게 싸운다. 결국 다람쥐 군집은 소수만 살아남게 된다. 식물 참나무는 동물 다람쥐보다 지혜롭다. 참나무는 해거리전략을 통하여 탐욕의 다람쥐 개체수를 손쉽게 제어하고 종자 도토리가 널리 확산되도록 한다.

참나무의 풍작 해거리(masting)효과는 신비하다. 풍작 해거리가 이루어지는 해에는 바람을 통한 군집수분(wind-pollination)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다간(多産)의 기적이 일어난다. 풍작 해거리전략을 통해 참나무는 다람쥐의 종자 씨앗의 약탈을 막아내고 종족을 보존하고 번창시킨다. 한편 풍작 해거리의 학습효과를 경험한 다람쥐 무리는 탐욕과 방만한 생태에서 벗어나 절제와 검소를 배운다.

참나무의 해거리전략의 의미는 심장하다. 풍요가 보장되어 있어도 과욕을 삼가라. 방탕하지 말라. 절제와 검소를 미덕으로 삼으라. 만일 풍요 속에서 스스로 절제, 통제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힘이 해거리 전략을 통해 나타나 당신의 과욕을 책망할 것이다.

예수는 말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헤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세상은 풍요, 쾌락, 탐욕의 모략으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는 중간정착지 하란에 덜썩 주저앉은 이유도 도시의 풍요함 때문이었다. 오비디우스(Ovidius)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풍요로움이 나의 영혼을 핍절하게 만든다.” 참나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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