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하늘은 예비해 두셨을까?

2024-06-06 (목)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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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漢志)에 유방을 도와 난세를 평정하고 한나라를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서한삼걸(西漢三傑: 소하, 한신, 장량)이 있다. 그 가운데 대중들에게 ‘장자방’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장량(張良: ?~ BC 186년)은 사마천(司馬遷)이 ‘하늘이 내린 참모’라 평한 인물이다.

장량의 조부와 아버지는 도합 다섯명의 왕을 보좌하며 상국(相國)을 지낸 한나라 명문가의 귀족출신이었지만 진시황이 한나라를 멸망 시키자 장량은 조국과 가문을 함께 잃게된다.

복수심을 키우며 성장하던 그가 장년이 되었을 때, 모든 재산을 털어 진시황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이름과 성을 바꾸고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하비로 가서 숨어 살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장량은 다리를 건너다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장량을 보더니 자기가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개울에 던지며 “어이! 젊은이 내 신발 좀 주워 오게”했다. 장량은 아무 불평없이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주워왔다. 그러자 노인은 “주워왔으면 내게 신겨야지”하며 자신의 발을 내밀었다. 그러함에도 장량은 공손히 신발을 신겨드렸다.

이에 노인은 껄껄 웃더니 “자네는 가르침을 받을 만하군” 하고 나서 “닷새후 해뜰녘에 이곳서 만나세” 하고 사라졌다. 그가 닷새후 아침에 와보니 그 노인은 이미 와 있었다. “배우려는 자가 어른보다 늦게 오다니⋯”라고 호통을 치며, “오늘은 안되겠다. 닷새후 해뜰녘에 다시 이곳서 보자”하고 사라졌다.

닷새후엔 전보다 일찍 도착했으나 역시 노인이 먼저와서 또 화를 내며 “오늘도 안되겠으니 닷새후에 또 보자”고 했다. 장량은 이번에는 나흘뒤 그곳에 가서 밤을 꼬박새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인이 나타나서 “일찍 왔군” 하며 한권의 책을 건네주며 “이 책을 열심히 공부하고 익히면 10년후에 너는 제왕의 스승이 되어 천하를 바로잡을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13년후에 제나라 북쪽 곡성산에 가면 그밑에 ‘노란 돌(黃石)’이 있을 것인데 그게 바로 나다”는 말을 남긴후 홀연히 사라졌다.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중국 전략서의 최고봉이자, 천고의 지혜를 담은 책으로 치국 사상, 민간의 지혜, 천하를 얻고 다스리는 법이 망라되고 역사적 경험이 총결된 책이다. 이 책은 “부도(不道), 불신(不神), 不聖(불성), 불현(不賢)한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는 비밀경계가 있는 책이었기에 장량은 이를 전수할 사람을 찾지못해 자신의 무덤까지 가지고 갔었다.

그가 죽은후 500년 뒤에 도굴꾼이 그의 무덤을 파다가 옥베게 속에서 모두 1,336자로 된 이책을 얻게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장량이 이 책을 전수받을 당시는 진시황이 죽은뒤 각처에서 난이 일어나는데 유방은 패(沛)에서 항우는 오(吳)에서 각각 군사를 일으킨다. 때를 기다리던 장량은 이곳에서 유방과의 운명적 만남을 하게되고 또한 소하와 한신도 만난다.

그는 힘이나 제반 여건이 우위에 있었던 항우보다는 인간미가 있고 자신을 존중해주며 서로 마음이 통하는 유방의 참모로 들어가 그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하게 만든 일등공신이 된다. 뜻을 이룬 장량은 13년전에 만난 노인의 말이 떠올라 곡성산을 찾아가니 노인의 말대로 그밑에 ‘노란돌’이 있어 그걸 옮겨와 잘 모셨고 그 돌과 함께 묻혔다고 전해온다.

황제가 된 유방은 최고의 개국공신인 장량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과 신임을 반증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했으나 그는 정중히 거절하였고, 유방이 계속 그를 가까이두려고 하자 그는 “세치의 혀로 황제의 스승이 되고 과한 봉읍을 받았으며 그 지위는 열후(列侯)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포의(布衣: 벼슬없는 선비)로 시작한 사람으로 지극히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이니 나는 더 이상 바랄게 없다” 며 과감히 물러났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일이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큰 일을 위해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고, 둘째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 일이다. 장량은 가문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뜻을 이루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후, 부귀영화를 버리고 초야에 묻힌 비범한 인물이었다. 반면 소하는 처세술에 너무 의지해 유방의 의심을 받았고, 한신은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토사구팽’의 치욕적 삶으로 생을 마무리했다.

흥망(興亡)의 기로에 선 오늘날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해 하늘은 ‘황석공’과 ‘장량’을 예비해 두셨을까?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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