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사울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황금의 기회가 두 번있었다. 처음 기회는 ‘들염소가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엔게디 동굴 안에서였다. 다윗은 부하 600명을 데리고 엔게디 동굴 안에 피신해 있었다. 이때 사울은 잠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독 안에 쥐와 같았다. 두 번째 기회는 사울과 군대장관 아브넬을 위시한 모든 군대가 진을 구축하고 깊이 잠들어 있을 때였다. 다윗은 아비새를 데리고 적진을 은밀하게 침투, 수색했다. 이때 사울의 음성이 가까이 들려 왔다. 이때 아비새는 다윗에게 직언했다. ”여기에 당신의 기회가 있습니다. 청하오니 나로 단 번에 그에게 창을 꽂게 하소서. (사무엘상 24장, 26장 중에서)
동굴에서 얻은 다윗의 기회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주어진 황금 같은 기회다. 부하들의 직언은 한결 같았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하지만 다윗은 부하들의 직언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깊은 생각 끝에 거부한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거부였다.
다윗은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은 예전처럼 똑같이 말했다. “사울을 죽이지 말라. 손도 대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어찌 죄가 없겠느냐.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야망은 다윗에게도 있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왜 다윗에게 없었겠는가. 하지만 다윗은 어렵고 고달프다는 이유로 자신의 욕망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치우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억제했다. 이것이 다윗과 사울의 다른 점이다.
다윗의 이 위대한 절제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하나님을 향한 경청(傾聽)이다. 다윗은 경청의 대가다. 다윗은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져야지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따랐다. 그래서 다윗은 늘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였다.
다윗은 자신의 영적 스승인 사무엘 선지자의 말도 늘 경청했다. 다윗의 경청의 능력은 광범위하다. 밧세바와 그의 남편 우리아 장군에게 큰 잘못을 했을때에도 나단 선지자의 말을 경청하고 회심했다. 불한당 같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말을 경청함으로 큰 살인을 피했다. 다윗에겐 용맹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경청의 힘이었다.
노인과 청년 두 나무꾼이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했다. 청년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했고, 노인은 한 시간마다 쉬어가면서 일했다. 저녁이 되어 쌓아놓은 두 나뭇단을 보니 노인의 것이 훨씬 많았다. 짐짓 놀란 청년이 노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노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청년에게 말했다. “자네는 쉬지 않고 일만 했지만 나는 틈틈이 도끼의 날을 갈면서 일했네. 다음부턴 일만 하지 말고 틈틈이 무뎌진 도끼의 날을 갈게.”
나무꾼에게 도끼의 날을 갈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겐 영혼과 정신의 날을 갈 시간이 꼭 필요하다. 행동과 경청의 균형이 필요하다. 경청의 지혜가 부족했던 사울은 폭포수같이 급하고 직선적인 삶을 살다가 몰락했다. 경청의 지혜가 넉넉했던 다윗은 일일신(一日新)하는 삶을 살았고 다윗 왕가의 견고한 초석을 닦았다. 경청의 사람 다윗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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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