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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나발니와 팔도 도시락

2024-03-0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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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트에 갔다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말했던 팔도(paldo) 도시락을 발견했다. 습관상 빨리 먹는 편인데도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렌지에 살짝 돌려 익히는데 4분, 라면을 먹는데 11분, 최소 15분이 걸렸다.

“라면에 물 넣고 7~10분을 기다려야 아주 맛있게 익는데 식사시간 제한으로 행복해야 할 시간이 지옥으로 변한다”며 “최소한 10분 정도는 느긋하게 도시락을 먹고 싶다”고 한 나발니, 제한시간 때문에 국물을 마시다가 혀를 데었다고 했다.

그는 이제 다시는 이 한국의 팔도도시락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푸틴의 정적으로 가장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나발니(47)가 2월16일 시베리아 최북단 제3교도소에서 급사했다. 서방 등 일각에서는 죽음의 배후에 푸틴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푸틴 대통령의 독재와 부정, 침략전쟁을 비판해왔다. 2020년 2월 서방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측근인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강하게 비판했던 그는 그해 8월 모스크바행 비행기 안에서 독극물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독일에서 치료받은 나발니는 2021년 1월 귀국길에 올랐고 러시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당국에 체포되었다. 그는 왜 죽으러 가는 길인 줄 알면서 굳이 러시아로 돌아갔을까.

2023년 3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나발니(Navalny, 2022)가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감독은 그에게 어떤 일이 발생해 살해당한다면 러시아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지를 물었다.

나발니는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깨닫지 못한다.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건 선한 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라고 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있지 말라는 그의 당부대로 아내 율리야 나발나야, 장녀 다리야 나발나야, 그들은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다‘고 의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나발니의 갑작스런 죽음 보도를 접하면서 1983년 8월21일 고국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한 베니그노 시미온 니노아 아키노 주니어(당시 50세)가 떠올랐다. 필리핀 국민들이 애칭 ‘니노이’라 불렀던 아키노는 197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독재권력을 강화하면서 투옥됐다. 정부 전복혐의와 불법무기 소지라는 이유였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며 마르코스 정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지자 마르코스는 1980년 아키노에게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3여년 미국에 있던 아키노는 필리핀 국민들과 함께 하고자 귀국을 선택했다. 친구들, 미국 정치인들이 만류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1983년 8월21일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지상으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내려온 순간, 암살당했다.

이후 평범한 주부였던 아내 코라손 아키노가 반마르코스 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결국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하와이로 도망쳤고 코라손 아키노는 1986년~1992년까지 대통령, 아들 베니그노 아키노 3세도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국마다 부정부패한 지도자와 관리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위대한 정치가는 당대에서 끝내야지 그 누구도 그 명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생각하지만, 어지러운 세상인지라 대를 잇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남편 또는 가족의 후광을 입고 지도자에 오른 경우가 많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인 태국의 잉락 친나왓 총리가 대표적이며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전 총리 또한 남편인 전 총리가 암살된 후 정치에 입문했다. 1991년 방글라데시의 첫 여성 총리가 된 베굼 칼레다 지아도 대통령 남편 지아 울 라만이 군사 쿠데타로 숨지자 정치에 나섰다.

나발니가, 아키노가, 죽지 않고 살았더라면 그들 모국의 미래가 더욱 희망적이지 않았을까.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당신이 탁월한 지도자라면 어떤 상황이건 목숨을 아끼라고 말하고 싶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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