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귀한‘만남’, 아름다운 관계

2023-11-02 (목) 조광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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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토요일 밤이었다. 교회 담임목사(김재열)님으로부터 카톡메시지가 왔다. “내일 이승종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이목사님이 조집사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나는 이목사님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왜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서 밤이 늦었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지면상 이목사님 이력은 생략한다. 다만 [한 젊은 목사가 보는 이승종 목사]라는 글에 눈길이 갔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말로만 하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종 목사님은 남다르게 소유에 대해 자유로움을 얻은 분이다. 소유에 대해 자유롭다는 의미는 집도 없고, 차도 없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체킹 어카운트도 없다. 무소유 의식을 가지신 분이다. 이승종 목사님이 만약에 어떤 소유욕을 가지고 있었다면 미국에서 3개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킨 후 1.5세에게 리더십을 물려주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략. ‘아멘 닷 넷’에서 발췌)


다음날, 내가 온 줄도 모르는 이승종 목사님(71)은 우리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짧은 덕담 후 “저는 제 딸의 결혼식 때 제가 주례를 섰습니다. 딸 앞에 서니 너무나 미안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딸에게 양말 한 켤레, 운동화 한 켤레를 사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잘살라는 말로 주례를 마치고 신랑신부를 퇴장시키려고 내빈쪽으로 돌아서게 했었는데 그때 갑자기 제 딸이 다음과 같이 말하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목사님이십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는 그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따님의 그 짧은 말속에는 이목사님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설교(말라기 4장 4-6) 제목은 ‘관계성 회복’이었다. 이목사님은 불의가 판치는 혼탁한 한국의 정치를 걱정하며,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고 일갈하셨던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비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1920~1968) 선생의 <지조론(志操論)>”을 언급하셔서 나를 놀라게 하였다.

설교를 요약하면 “선비정신으로 뜻을 세운 사명자(使命者)로서의 크리스천, 목회자의 인격 그리고 목회자와 교인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설교였다. 비유와 위트와 유머를 곁들여 거부감없이 이 시대 교회의 문제점들에 일침을 가하며, 신앙의 본질과 핵심을 일깨워 주었다.

즉, 본질에 벗어나 있으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착각을 경계, ‘교회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 ‘헌신’이 아니라 ‘희생’을, 교회 내의 서열 STOP, ‘언행일치의 삶’을 주문하였다. 이를 행하고 지키고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지조’이다. 흔들리거나 변절하지 말고 초지일관, 시종여일 굳은 신념으로 지조를 지켜나가는 크리스천(지도자, 목회자)이 되라는 내용이었다.

예배 후 이 목사님은 “조집사님은 이 교회를 30년 다니셨고 저는 이 교회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제서야 만났군요”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저는 고교시절부터 조지훈 선생님을 흠모하며 살아온 사람으로 신학을 공부할 때에도 지훈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멘토십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목회학’의 핵심 교훈으로 지훈 선생님의 ‘지조론’을 강의합니다. 그리고 저는 조집사님이 쓰신 책 <승무의 긴 여운, 지조의 큰 울림>(부제: 아버지 조지훈의 삶과 문학과 정신)을 7번이나 읽었답니다. 영문으로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어요.” 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이목사님과 나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이요 인도하심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 명성에 누가 될까 봐 글 한 편 쓰지 못한 채 오십 중반까지 지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글을 쓸 수 있었고, 이 책을 쓰도록 영감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졸서가 하나님께서 크고 귀하게 쓰시는 이목사님을 감동시켜서 차세대 목회자 양육에 교재(敎材)로 ‘쓰임’을 받게 될 줄이야$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뤄진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런가?

<조광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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