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술과 신앙

2023-10-31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크게 작게
옛적 감리교 찬송가에 금주가(禁酒歌)라는 것이 있었다. 합동찬송가를 만들 때 이것은 찬송가의 가치가 없다고 하여 빠졌다. 금주가는 한국 여성 교육의 공로자 김활란 박사가 청년 시절 뉴욕여자사범대학에 다닐 때 지은 것인데 내용은 이렇게 나간다.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말아/ 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될까 늘 두렵다/ 아 마시지말아 그 술/아 보지도 말아 그 술/ 우리 나라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있느니라 /
초창기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가서 오해를 한 것이 있다. 농민들의 생활 속에 곁드리라는 것이 있다. 새벽부터 일을 하기 때문에 아침식사와 점심 사이에 밥을 한 번 더 먹는 것이 곁드리다. 이때 막걸리를 함께 마신다.

알콜분이 약간 있지만 취해서 일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이것을 선교사들은 조선사람들은 낮술을 마신다고 본 것이다. 이래서는 나라가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기독교인은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종의 생활 개선운동으로 내놓은 것이다.


조선에서 여자들보다 술을 더 마시는 남자들이 교인이 되기를 꺼려 하였다. 물론 술뿐은 아니고 조상님께 제사 드리는 것도 일종의 우상 숭배로 보아 금지하였다. 옛날 돈푼이나 있는 남자들은 첩을 많이 두었는데 물론 이것도 금지하였다. 조선남자들이 교회에 가기 어려운 이유들이 많았던 것이다.

한국 방문 중 모 대학 총장을 지낸 노인 목사님의 점심 초대를 받은 일이 있다. 식탁에 한국식 옹기단지가 놓였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동동주라고 한다.
술의 이름 같은데 마셔보니 전혀 알콜분이 없고 달콤하다. 한국에서는 알콜분이 거의 없는 술을 많이 개발했다고 한다.

현대는 음료수의 천국이다. 나는 의사가 물을 마시지 말라고 해서 그 좋은 음료수들을 못 마시고 산다. 싫은 것은 하고 좋은 것은 못하는 것이 사람의 팔자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술을 안 마신다. 종교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체질상 술이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막내인 나를 가장 사랑하셔서 식사 때 나와 겸상을 하셨다. 점심과 저녁 식사 때는 반주라 하며 반드시 술을 한 잔씩 하셨다. 소화를 돕는 것이니 보약이나 같다고 하신다.

술을 보약으로 보는 관찰도 있다. 아버지는 가끔 친구들과 함께 대정관이란 술집에 가셨다. 기생들도 있는 술집이므로 “아버지를 모셔 올까요” 하고 말하면 어머니는 “내버려두어라. 바쁘게 일하는 분이니 가끔 숨을 돌리기도 하셔야겠지” 하고 대답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술에 대하여 상당히 너그러웠던 것 같다.

아버지의 취미는 바둑을 두는 것이었다. 한약방 주부와 바둑을 둘 때 두 분은 술을 마시면서 가끔 깔깔 웃는다. 바둑이 좋아서인지 술이 좋아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교회에 가자고 하면 “교회에 가면 술을 못 마신다면서?”하고 거부의 이유를 술에 두었다. 술의 매력이 대단한 것 같다.

옛날 방랑 시인 김삿갓은 술 한잔 주면 시를 한 수 남기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술은 시상이 떠오르게도 한 것 같다. 나의 친구들은 식당에 갈 때 술을 들고 간다. “술 없이 식사를 못하나?” 하고 물으면 “자네는 술을 안 마시니 큰 인간의 재미를 모르고 사는 군” 하고 술을 인생 살이의 높은 자리에 놓는다.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교인 중 술장사를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술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그 종류만 알려고 해도 일년이 걸린다고 한다. 특히 와인(포도주)의 종류를 다 알면 그는 드디어 술장사를 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술에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