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무라토와 이도령

2023-10-03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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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들이 노예로 살 때 흑인들 사이에 무라토의 전설이 나돌았다. 장차 흑인 영웅 무라토라는 사람이 나타나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하고 자유인이 되게 할 것이라는 전설이다. 흑인 노예들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었다. 그들은 무라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조선 시대 한국은 일본의 압박을 받았다. 일본 군대의 힘에 눌려 조선 사람들은 노예와 같이 살았다. 그 당시 조선 사람들 사이에는 이도령의 전설이 퍼져갔다. 충청도 용산에 이도령이란 영웅이 나타나 일본군을 몰아내고 해방을 가져올 거라는 전설이다. 역시 눌린 사람들 사이에 퍼진 해방의 전설이다.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을 이렇게 천명하셨다. “내가 온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하기 위해서이다.”(누가복음 4장 14절)


한 마디로 하면 인간의 해방을 위하여 왔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란 극빈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자 즉 마음이 허탈한 자를 가리키고 눈먼 자도 맹인을 말하지 않고 영적 맹인 즉 참다운 인생의 목적을 모르는 자를 가리킨다.

주님의 은혜의 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해방의 때를 가리킨다. 예수 믿는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많은 거부 속을 살아간다. 경제적인 어려움, 병과의 싸움, 직업상의 어려움, 대인관계에서 받는 고통, 가족의 문제 등 수많은 고통을 뚫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이런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왜 신앙생활을 안하겠는가.

예수는 받아들이는 생애를 보였다. 가난한 노동자 어부들 네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였고 창녀라고 생각되던 막달라 마리아를 가까이 하셨으며 각종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셨다. 그는 눌린 자의 친구였던 것이다.

파웰 대장은 2차 대전 때 유럽에 파견한 미군 사령관인 흑인이었다. 제대후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고 자기가 자라난 뉴욕 브루클린을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이곳은 내가 자라난 마을이다. 너희들도 나처럼 가난하지만 꿈을 가져라, 너희들도 열심히 공부하면 장관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 그는 흑인과 가난한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외친 것이다.

일본에 선교한 미국 목사 클러크 박사는 일본 청년들에게 “청년들이여 큰 포부를 가져라”고 외쳤다. 클러크 박사의 제자들이 일본 유신 즉 일본을 현대의 문명국으로 만드는 대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큰 뜻 원대한 목표가 중요하다. 어떻게 먹고 살 까가 아니라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하는 큰 뜻을 품어야 한다. 행운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행운을 만드는 것이다. 목표에 도달 못해도 좋다. 달려가는 전력의 투구만으로도 성공이다.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일단 출발하여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
.
내가 50년 전 미국에 와서 처음 가진 직장은 우범소년 (범죄 직전에 있는 문제소년들)을 지도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가정도 학교도 다룰 수 없는 문제아들이다. 나의 영어도 짧았지만 그들은 나를 좋아하였다. 나는 그들의 교사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받아들일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 손을 잡을 것이냐 뿌리칠 것이냐? 수용할 것이냐 밀어낼 것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소위 긍정적인 삶이란 받아들이는 인생관을 말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매사를 적극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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