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2023-09-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출근길 50분 동안에 차가 막히면 지루하다 보니 잠깐씩 지난날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주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아하, 지금은 기억이 나지만 나중에는 송두리째 기억못하는 일도 생기겠구나 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그나마 이렇게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의 뇌가 건강하다는 것이 아닌가.
주위에서 치매 걸린 노부모, 요양원에 들어간 친지, 아들딸도 못알아본다는 이웃 할머니 등등 과거를 잊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그외 건망증이나 기억력 저하에 대한 에피소드는 수없이 듣고 본인이 경험하기도 한다.

아밀로이드 이상 단백질들이 뇌에 침착하면서 뇌손상을 일으킨 노인성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불린다. 노인성 치매는 후천적인 기억, 언어, 판단력 등의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 감소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 못한다.


초기에는 일상생활 능력 저하가 나타나지만 심해지면 밥 먹기, 씻고 옷입기, 대/소변 조절 등 기본적 생활능력이 저하되고 심해지면 사람도 못알아본다. 망상, 환각, 행동 및 성격의 변화도 발생한다.

최근, 초기 치매 환자나 치매 경과를 늦추거나 증상을 개선 시키는 약물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 치매는 한 번 진행되면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대여명은 짧게는 3년~20년인데 평균 10년 정도, 인간의 삶은 단 한 번뿐, 모두가 정상적인 노화를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나이가 들수록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최근에 본 영화 ‘그대 어이 가리(이창열 감독, 2022년)’는 치매환자 아내와 간병하는 남편, 오랜 간병으로 점점 지쳐가는 딸과 사위의 이야기이다. 아내의 치매 증상이 심해져 가면서 온 가족의 일상이 무너져 내린다.

밤에 잘 때 아내의 손과 자신의 손을 묶기도 하다가 나중에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나 그곳에서도 심각한 증상으로 인해 더이상 있을 수가 없다. 임신 중인 딸마저 위태로운 처지가 되자 남편은 아내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어떤 결심을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저절로 “남의 일이 아니다. 내게 닥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영화는 샌디에이고예술영화제를 비롯 중소 해외영화제에서 51관왕으로 독립장편영화 최다 수상을 기록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치매 발생 위험이 커졌다. 집에 머물거나 재택근무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 배달음식 섭취 증가, 고립감 심화는 치매 위험 요인인 것이다.
미알츠하이머협회에 의하면 현재 6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향후 20년동안 2배로 증가, 2050년 1,3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미국립노화연구소(NIA)는 앞으로 6년간 3억달러를 투자하여 알츠하이머병 연구 및 데이터를 수집한다.

치매환자로써 삶의 마무리를 가장 잘한 사람은 냉전 종식에 앞장섰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었다. 1994년 11월5일 당시 83세인 레이건은 직접 손으로 쓴 ‘사랑하는 국민에게’ 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불행히도 이 병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 큰 짐을 안겨줬다. 낸시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길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하고 있지만 미국의 앞날에는 언제나 밝은 새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이 나에게 준 여생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잘 있으시오, 친구들이여, 신의 은총을! ”

제40대 대통령(1981년~1989년)은 이렇게 의연한 태도로 삶의 마무리를 했다. 레이건은 이후 10년간 투병하다가 2004년 6월5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책임감 있는 지도자로써 국민에게 보내는 마지막 연서는 지금도 가슴 뭉클하도록 아름답다. 당신이 지금 65세 이상이라면 늘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어도 마음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황혼으로 가는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아름다운 연서 한 통을 써두자.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