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그 시절이 그립다

2023-08-18 (금) 이혜련/테네시 내쉬빌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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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화여대 사범대학 사회생활과 4학년 2학기인 1973년 12월18일 명동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결혼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종로2가 YMCA 지하 미용실에서 주인이 직접 화장을 해 준 다음 웨딩드레스를 입혀주고 꽃다발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긴 머리가 무척 검었다. 지금은 머리가 희어져서 한인미용실에서 가끔 염색을 하고 파마를 하고 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웨딩드레스 목에 둥그런 하얀 털을 걸고 찍은 결혼 사진을 보면 몸도 날씬하고 아름다웠다.
결혼식에는 내 친구 약 50명이 왔다. 선물이 무척 많이 쌓여있었다. 그 선물을 지금 내가 갖고있는 것은 없다. 신혼여행 가서 부산 해운대에서 남편이 사준, 한복에 드는 예쁜 구슬백은 새것 그대로 있다.


내년 1월1일 신정에 한복을 입고 남편이 옛날에 낙스빌 몰에서 사준 밍크 한제 반코트하고 입을 예정이다. 그 구슬백을 들고 말이다.
내가 입은 신혼여행 옷을 보고 엄마 친구들 중 멋쟁이 아줌마가 “명동에서 맞췄니?” 하시길래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지금도 그 모직 체크 스커트는 갖고 있다.

지난 겨울초 추운 날씨에 그 스커트를 입고 교회에 갔었다. 그 스커트를 입으면 내가 이대생이 된 기분이다. 젊어진 것같은 것이다. 남편도 신혼여행시 한국에서 처음 명동에 문을 연 남성복 전문점 GQ 겨울 코트를 입었었다.

지금은 못입지만 아직도 갖고 있다. 그 코트는 아들 현보가 컬럼비아 대학에 다닐 때 옷수선 가게에서 길이를 30달러 주고 고쳐입기도 할 정도로 지금도 멋진 옷이다. 결혼 후 나는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았다.

결혼 전 봄에는 외삼촌 희선언니 결혼식이 있었다. 나는 분홍 원피스에 엄마가 대학 3학년때 사준 일본 진주양식 목걸이를 하고 갔다. 지금도 그 목걸이는 사진을 찍을 때 여러 번 사용했다. 딸 지영이가 고등학교 졸업 사진에도 이 목걸이를 걸고 사진을 찍었다.

결혼후 임신 2개월 때인 1974년 2월말에 열리는 졸업식에 참여했다. 졸업식에 엄마와 시어머니가 꽃을 사오셨다, 엄마가 시어머니가 사온 국화꽃과 동백꽃이 있는 꽃다발을 들라고 했다. 엄마의 말대로 시어머니가 주신 꽃다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한 우리 어머니, 나를 대학에 보내고 무사히 졸업시켜 졸업장을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졸업장과 3급공무원 자격증, 중고교 교사 자격증을 받았지만 나는 아들을 임신했고 광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 교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미국에 와서 아이들을 낳고 뉴욕에서 살다가 테네시에서 살고 있다. 남편과 미국생활 중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시절 그 때가 그립다.

<이혜련/테네시 내쉬빌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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