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정전 70주년을 돌아보면서

2023-08-02 (수) 임형빈/한인원로자문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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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산 집단이 6.25 전쟁을 일으키고 수백 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물밀듯이 남침, 졸지에 대한민국이 사라질 뻔한 위기 속에 이승만이란 위대한 인물이 있었기에 존립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자타 공인하는 바다.

이러한 위기 속에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건너가 미국 대통령을 움직여 U.N 총회를 열게 하고 거기서 열변을 토하여 열강들이 감동한 나머지 27개국으로부터 전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에 전세가 뒤집혀 인천상륙 작전이 이루어지고 북진통일이 이루어져 가는 찰나였다, 갑작스레 중공군이 개입, 인해전술로 전세가 악화되자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이루어지고 만 것이다.


정전 협정 70년이 됐건만 북측은 끊임없이 협정을 어겨가며 불법 도발만 해왔다. 제1땅굴사건이며 연평해전, 천안함 파괴, 계속적인 대남 간첩 작전 등등으로 육, 해, 공군, 해병대에서 4,268명과 주한 미군도 98명이나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뿐이랴 지금까지도 수십 차례에 걸쳐 핵 미사일 시험까지 서슴치 않고 있으니 정전협정이 있으나 마나 한 상태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은 북측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느니 이를 빌미로 주한미군 철수와 U.N 군사령부 해체 등을 요구하며 한미동맹의 무용론까지 주장하는 자도 있는가 하면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폄훼 발언하는 자들도 있다.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70여 년 전에는 가난에 쪼들려 경제적으로 최약소 국가였지만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이 두 분의 일등 공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승만 박사께서는 고종황제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에 전달, 독립운동을 호소한 사실이 일본에 발각되어 투옥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출옥 후 미국 곳곳으로 다니며 독립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고 중국 상해에서는 임시정부를 수립, 초대 대통령직을 수행한 바도 있다.

해방 후 귀국해 보니 북에는 김일성이 북로당을 남한에는 박헌영이 남로당으로 온통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이승만 박사가 기지를 발휘, U.N 승인하에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1953년 7월 정전 협정 직전인 같은 해 6월18일 반공 포로 석방이란 과감한 결단을 감행함으로써 미국의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노발 대발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어찌하랴! 이렇게 미국과 사전 상의 없이 단독적으로 강행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사람이 이승만 박사 외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고국에서는 이승만 박사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회관 건립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 하니 천만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이며, 경부고속도로, 중공업 육성 등으로 급격한 국가의 성장 발전을 이루어 내어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한 일등 공신이 아니겠는가!

<임형빈/한인원로자문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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