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 인생의 수확

2023-05-30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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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의 수확도 있지만 인생의 수확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만족스런 수확을 하고 어떤 사람은 꺼림칙한 수확을 한다. 어떤 이는 기쁨의 수확을 하고 어떤 이는 슬픔의 수확을 한다. 수확의 결과를 종교에서는 천국, 지옥으로 표현한다.

여음(餘音)이라는 것이 있다. 돌을 호수에 던지면 물방울이 얼마동안 이어진다. 소리도 여음이 있어 발음한 뒤에 약간의 여음이 이어진다. 산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울린다.

뉴요커들은 양키즈 팀의 유명한 감독 빌리 마틴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잘 한 것은 야구 감독의 일 뿐이었다고 한다. 부부 생활도 실패, 아이들과도 사이가 몹시 나빴고, 알콜중독에다가 좌충우돌 누구와도 싸왔다. 어른의 체통도 없이 주먹질을 예사로 하였다. 결국 일찍 죽었지만 수확이 좋지 않다.


이런 사람에 비해 고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오나시스는 어떤가. 암과 싸우다가 64세로 단명했으나 신문들은 그녀를 사랑받은 여인이라고 불렀다. 부호 오나시스와의 재혼 때도 미국인들은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뉴욕의 아파트 생활 때도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조용함과 겸손과 따뜻함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이런 품위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습성이 그런 여음을 만드는 것이다.

대체로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여음이 꺼림칙하다. 평소 우둔하게 보여도 진실한 사람들이 여음이 좋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나의 파장은 돈을 잘 썼다든지 사교술이 좋았다든지 하는데 있지 않고 그 사람의 친절, 겸손 등 아름다운 행위에 달려있다.

미국인들은 사형 당한 존 게이시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무려 33인을 죽인 연쇄 살인마이고 16년 감옥살이 끝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형 당일 그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닭튀김)이 먹고 싶다고 하여 한 상 잘 차려 먹고 한바탕 불평을 털어놓았다. 사형 제도는 살인인데 정부가 이런 야만스런 제도를 따르면 안된다고 큰 소리를 치고 죽어갔다. 여음이 몹시 나쁜 사람이었다.

내가 목회 하던 교회에서 한 노인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많은 찬사를 말하였다. 모두가 자기가 그 여인에게 받은 친절의 사례들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녀가 만들어준 구리만주(팥빵)를 못 먹어본 교인이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장례에는 광고도 안 했는데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여음이 최고의 여인이었다.

내가 아는 한 여인은 장기간 요양원에 있는 불우한 사람인데 쉬지 않고 털실로 모자를 떠서 여러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하고 있다. 그녀의 모자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너무나 감격해서 눈물도 흘린다. 병든 사람도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

또 내가 아는 한 노인은 병원에 있으면서 환자들의 심부름을 하고 어째서 나를 도와주느냐고 물으면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말없이 선행을 하는 한인 노인이다. 나도 그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어 몹시 감동을 받았다.

또 한분 나를 감동 시킨 사람은 한인 요양원에 매 일요일 방문하여 노인들에게 예배를 인도하는 늙은 목사님이었다. 어디에 사시느냐고 물으니 그저 40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하고 말하며 웃기만 한다.
보수도 없이 은퇴 후 이런 봉사를 하고 있다. 훌륭한 분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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