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오클랜드 호수공원의 봄날

2023-04-17 (월) 윤관호/국제 PEN 한국본부 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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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 기분 전환을 위해 뉴욕시 베이사이드에 있는 오클랜드 호수공원(Oakland Lake Park)에 왔다. 1만5000년 된 자연호수로 먹이가 많기 때문에 겨울에도 새와 물오리와 백조가 모여드는 곳이다.

청둥오리들과 캐나다 구스(Canada Goose)들이 물위를 노닐고 있다. 갈매기들도 물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청춘남녀 한 쌍이 잔디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젊음은 꿈꾸고 표적을 향해 달려 나아가기 좋은 시절이리라.

한 중년 남성은 낚시대를 물에 담그고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다.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는 모양이다. 엄마가 미는 유모차를 타고 온 유아는 유모차에서 나와 이리 저리 뒤퉁뒤퉁 잘도 걷는다. 넘어질세라 엄마가 뒤따라가고 있다. 사랑의 보살핌을 받는 유아는 더 할 수 없이 즐거운 표정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돌려고 오른 쪽으로 걸어간다. 수양버들 나무들이 새싹이 나와 연초록을 띄고 있다.
수선화가 청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란 색의 민들레꽃들과 개나리꽃들이 주위를 밝히고 있다. 나무들이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겨울에는 보이지 않던 자라들이 물위에 떠있는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아 햇볕과 봄바람을 즐기고 있다.

나는 얼른 휴대전화기를 꺼내 자라들의 앙증맞은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은발의 여인이 캔버스에 초봄의 호숫가 풍경을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다. 사진기를 들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촬영하는 사진 작가들도 눈에 띈다.

작은 갈대밭에서 백조 한 마리가 누른 갈대들 사이에 앉아 알을 품고있다. 소중한 생명의 탄생을 위해 40일동안 알을 품고 있어야 한다. 밤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으로 알들이 부화하기에 적합한 온도를 유지하며 낮이나 밤이나 헌신적인 사랑으로 알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수컷으로 보이는 백조 한 마리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는지 물위를 미끄러져 간다. 여러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햇볕을 쬐고 있다. 겨울 동안 움츠리고 있던 몸에 봄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나는 천지에 만연한 봄기운을 느끼며 약간 냉랭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걷는다.

캐나다 구스 한 마리가 꽥꽥 소리를 내며 물 위를 박차고 올라 호수 상공을 한 바퀴 돌고 멀리 난다. 추위와 눈보라를 참고 견뎌내어 봄날을 맞은 기쁨이 넘쳐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간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 왔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깨끗한 영혼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윤관호/국제 PEN 한국본부 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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