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그 누가 말했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2023-04-14 (금) 노재화/전 성결대 학장·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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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넓디 넓어서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긴 하지만, 뉴욕에서 지난 겨울은 겨울다운 눈도 보지 못하고 어느새 창밖에는 목련과 개나리가 활짝 피어 봄의 전령사인 양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제 앞다투어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는 4월이다. 그러나 그 누가 말했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4월이 되면 글께나 쓰는 작가들은 누구나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의 시 ‘사월은 잔인한 달’을 연상한다. 이 시가 나온 지 올해가 딱 101년이 되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 흔든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하략) "


이 시의 전체는 1부〈죽은자의 매장〉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의식 제시와 재생의 기약, 2부 〈체스 게임〉에서 상류층 연인들의 근원적 고독감과 하층민의 타락상 묘사, 3부 〈불의 설교〉에서 공허해진 인간 관계와 생명의 경시, 4부 〈수사〉에서 누군가의 희생, 5부 〈천둥〉에서는 재생의 가능성 등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5부작의 시이며, 이것들이 시의 입체적인 주제들이다.

또한 주목할 것은 엘리엇이 미국문학사에서 새로운 언어미학의 기초를 마련하고 토대를 세운 이미지즘 운동에서 시작되어 시의 감정을 잘 들어내는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현대시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당시 유럽 문학의 변방으로 취급받는 미국문학을 독립문학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유럽의 모더니즘에서 미국만의 토착적인 모더니즘을 개척한 작가들로 에드가 앨런 포우, 윌리엄 딘 하웰즈, 헨리 제임스,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스, 월트 휘트먼, 윌리엄 포크너 등의 기라성 같은 문학가들을 들 수 있다.

이 모더니스트들이 구체적으로 전쟁의 폐해와 질식할 듯한 유럽의 상황, 현대판 불모의 땅에서 메말라가는 세상, 현대문명 속에서 불완전하

게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병리 현상을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성적인 과학으로는 더 이상 설명해 낼 수 없는 세상과 인간의 존재, 그의 불안한 상황이 당시 서구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혼란과 분열,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 등은 그리스도가 그 정신적 지주였던 서구문명에서 병들고 무력한 서구인의 자화상으로 진단했던 세상이 이 황무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과연 이 시의 결론이자 5부에서 천둥이 진실로 재생과 풍요의 비를 뿌려주는 천둥일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주었는가/ 인간은 이에 공감하고 있는가/ 인간은 과연 자제하였는가라고 비평가들은 묻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황무지에 재생과 부활의 비내림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끝나는 것이 이 시의 한계일 거다.

그렇다면 이 같은 황무지에서도 우리의 생명과 소망은 없단 말인가? 새 봄을 기다리며 겨울내내 동면했던 인동초가 이제 기지개를 펴며 생명의 순을 살포시 내민 자연처럼 우리내 시련 속에서도 삶의 도전장을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가적 전원시인 박목월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준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하략) "

사월은 세계인의 축제인 부활의 달이다. 사월에는 3월 이른 봄을 지나 얼었던 강물이 녹아내리며 죽은 땅에서 수많은 생명이 단단한 어둠을 뚫고 밀고 올라와 꽃을 피우며 벌 나비가 춤을 추듯이, 이 땅에도 전쟁이 종식되어 평화가 찾아와 반목과 질시가 눈녹듯이 녹아지고, 분열과 단절이 화합과 소통으로 이어지며, 상처가 치유되어야 할 소망을 가져보자.

황무지의 잔인함을 극복하고 부활과 영광의 사월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우리 모두 구세주에게 빌어 봄이 어떨까! 그래서 사월은 잔인한 달이 아닌 생명과 소망의 달이라고...

<노재화/전 성결대 학장·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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