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상처가 아물면 보석이 된다’

2023-03-20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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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가는 페인트다. 1,350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 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의 비색은 천 년이 간다. 하지만 옻칠의 수명은 2,000년 이상이다. 옻칠의 원료가 되는 옻 수액은 심은 지 7년이 지난 초여름에 옻나무에 깊은 상처를 내어 채취한다. 채취자가 옻나무의 뿌리에서 약 30센티미터 위쪽부분에 날카로운 칼로 굵어 깊은 상처를 내면, 옻나무는 하얀 수액을 만들어 아픈 상처를 겹겹이 감싼다. 이때 나무 표피 밖으로 흘러나온 수액을 받아낸 것이 바로 옻 수액이다.” (전용복의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 중에서)

’석상오동(石上梧桐)‘은 최상의 거문고와 가야금을 제작할 때 쓰이는 나무다. 석상오동(石上梧桐)은 돌 틈에서 자라다 말라죽은 오동나무(石上自古桐)다. 비옥한 땅에서 편안하게 잘 자란 오동나무는 나무가 여물어 최상의 음을 공명하지 못한다.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온갖 풍상을 이겨내며 자란 오동나무라야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역설적이지만, 고귀한 축복은 아픈 상처를 통해서 임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삭빠르게 살았던 야곱은 결국 실패하고 깊은 좌절의 늪에 빠졌다. 돌파구로 삼았던 외삼촌 라반의 슬하에서의 삶도 실패로 돌아갔다. 삶의 위기의식을 느낀 야곱은 얍복강 기슭에 엎드려 하나님과 독대했다.


야곱을 찾아온 하나님은 미리 작정하신 듯 야곱의 환도를 쳤다.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야곱은 다리를 절었다. 상처의 아픔이 솟아날 때마다 그 아픔을 감싸기 위해 야곱은 수액을 만들었다. 야곱의 수액은 기도였다. 상처를 감싸는 야곱의 기도는 간절했다. 밤을 새는 기도는 얍복강 기슭을 메아리쳤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축복의 아침이 다가오자 상처와 부르짖는 기도가 있던 그 자리에 보석 같이 빛나는 새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야곱은 새 존재가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던 야곱은 찬란하게 도약했고 12지파의 조상 ‘이스라엘’이 되었다.

빅톨 플랑클(Viktor Frankl)은 말했다. “폭풍 앞에서 촛불은 쉽게 꺼지지만 산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른다. 역경과 시련 앞에서 약한 신앙은 쉽게 무너지지만 강한 신앙은 더욱 굳세어진다. 외부의 자극과 인간 내면의 반응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 의미 있는 반응을 선택할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 평면에 있는 자신을 향하여 초월의 의미를 수직으로 세우라. 그때 상처는 빛나는 보석이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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