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사가모어 힐 미 국립사적지

2023-02-17 (금) 윤관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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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모어 힐은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1858년 10월 27일~1919년 1월 6일)가 1885년부터 1919년 서거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정원과 숲과 소금습지, 비치도 딸려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북쪽 해안인 오이스터 만 부근에 위치해 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가 이곳을 원주민 부족 말로 지도자란 사가모어 이름을 따서 사가모어 힐(Sagamore Hill)이라 불렀다. 미국립사적지이며 기념관도 있다. 빅토리안 양식의 저택 안에는 대통령 재임시기(1902년-1908년)에 있었던 가구와 장식품이 놓여 있다.

사냥을 좋아하던 그가 사냥한 표범가죽과 곰가죽, 박제된 사슴도 있다.
사가모어 힐은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하계 백악관으로 불리었다. 이곳에서 중요한 일들이 행해졌으며 러일전쟁의 종식을 위한 고위급 외교회담도 열렸다.


그는 수십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스페인과의 전쟁에 민병대를 조직하여 참전했고 뉴욕 주지사도 했다. 1901년 9월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되어 부통령이었던 그가 42세에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한 대통령 취임은 1905년에 이뤄졌다.

그는 트러스트를 통해서 과도하게 성장한 존 피어폰 모건, 앤드루 카네기, 라커펠러 등의 대기업들을 셔먼 독점금지법으로 통제했다. 1906년에는 ‘헵번 법’을 제정, 주간 통상규제위원회에 최고운임 설정기능을 부여하여 철도 운임 요금을 규제하게 했다.

그는 산림청의 권한을 확대하고 2,000여 개의 댐 건설사업을 백지화하거나 인허가를 취소했다.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토지보호와 자연보호 정책을 추진하여 거대한 면적의 연방소유지가 개발제한구역과 개발금지구역으로 책정되었다.

그 외 지역에는 토지수용이나 연방정부에서 매입하는 정책으로 국립공원은 2배로 증가했고 16개의 관광지와 51개의 야생서식지가 생겼다. 식품의약규제법을 제정하게도 했다.

외교정책은 팽창주의로 중남미로 적극적으로 진출했고 1904년부터 파나마 운하 건설을 추진했다. 1905년 7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 사이에 만주와 조선에서의 일본의 보호를, 필리핀에서의 미국의 보호를 상호 인정한다는 ‘태프트-가쓰라 밀약’ 이 이뤄졌고 7월 31일 그가 추인했다. 동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을 통한 미국의 국익을 도모했으나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가속화한 그의 과오이다.

러일전쟁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1906년 현직 대통령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첫 부인인 앨리스 사이에서 1녀, 상처후 부인 에디스 사이에서 4남 1녀를 두었다. 넷째 아들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918년 전사했다. 장남과 2남, 3남은 1차,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고 장남은 프랑스 전선에서 사망했다.

사가모어 힐 미 국립사적지를 방문하여 미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발자취를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리라.

<윤관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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