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입춘의 의미와 삼재풀이

2023-02-08 (수)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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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지속되던 강추위가 미국 동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후 입춘이 시작되었다. 봄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든 것이다. 입춘(立春)은 봄이 시작되는 날이자 24절기 맨 처음에 온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라는 말처럼, 봄을 알리는 절기라 해도 양력 2월 4일은 아직 동장군이 물러나지 않은 시기다.

입춘방(立春榜)과 입춘부(立春符)를 꼽을 수 있다. 입춘방은 대문과 문설주에 좋은 글귀를 써 붙이는 것으로, ‘입춘대길(立春大吉)·건양다경(建陽多慶)’처럼 크게 길하며 밝은 기운과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라는 풍습이다. 입춘부는 삿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부적으로, 새해의 첫 절기이자 봄을 맞는 입춘 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됨이 가득하길 바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팔왕일(八王日)’이라 하여 인간사를 맡은 왕신(王神)이 교대하는 날로 여겼다. 팔왕일은 봄의 입춘과 춘분, 여름의 입하와 하지, 가을의 입추와 추분, 겨울의 입동과 동지의 여덟 절기를 말한다. 사계절의 시작과 각 계절이 최고점에 이른 날들로, 이때는 하늘과 땅의 음양(陰陽)이 서로 바뀌니 거대하고 오묘한 자연의 질서를 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특히 입춘과 동지를 명절처럼 중요하게 여긴다.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 또한 다음 날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져 ‘작은 설’이라 불렀듯이, 두 절기는 ‘시작과 희망’이라는 공통의 의미를 지녔다. 동지가 하늘의 기운을 중심으로 본 것이라면, 입춘은 그러한 기운이 땅에 미쳐 생명의 온기가 싹트는 시절인 셈이다. 불자들도 이날 절을 찾아 불공을 올리면서, 새해를 경건하게 맞이하고 원만 무탈하기를 기원해온 역사가 깊다.

입춘에는 삼재풀이를 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삼재(三災)는 도교에서 비롯된 관념으로, 태어난 해에 따라 주기적으로 겪는 세 가지 나쁜 운수를 뜻한다. 도교에서는 이를 수재(水災)·화재(火災)·풍재(風災)라 보는데,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액운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액운을 막아내기 위한 다양한 처방을 삼재풀이라 부른다. 삼재는 9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와 3년간 머무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첫 해는 삼재가 들어오니 ‘들 삼재’라 하고, 둘째 해는 머무르며 누워 있다고 하여 ‘늘 삼재’, 셋째 해는 나가는 해라서 ‘날 삼재’라 부른다.

고려속요인 ‘처용가 ‘에 ‘삼재’라는 용어가 나오고 용주사의 고려 석탑에서 삼재 부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삼재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삼재에 해당하는 이는 집 문설주에 매 세 마리를 그려서 붙인다. 삼재에 든 3년간은 언동을 조심하고 모든 일에 삼가며 꺼리는 일이 많다.”라고 하여, 조선시대에는 삼재 개념이 널리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삼재가 들었을 때 근신하는 한편, 이를 막아내기 위한 민속적 대응 또한 다양하다. 삼재가 드는 해라고 하여 나쁘게만 보거나 위축돼 살아가는 이는 사실상 없다. “삼재는 들었는지 모르게 지나가면 제일 좋다.”는 말이 있듯이, 삼재와 무관하게 시절 인연과 마음의 작용이 만났을 때 나쁜 운세도 얼마든지 ‘복삼재(福三災)’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불교에서는 ‘선행을 가장 큰 부적’이라 보고 있다. 부적이 지닌 심리적 처방을 넘어서서, ‘최고의 벽사기복은 최선의 자비’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악을 물리치는 가장 큰 공격은 선을 실천하는 보살행이니, 부적을 쓰는 것이 소극적인 삼재풀이라면 선행으로 복을 짓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삼재풀이다.

선행이야말로 불교와 민간의 구분 없이 최고의 삼재 액땜이라 여겨온 것이다. 남을 위해 행한 일이 나를 위한 복이 되고, 나를 향해 닦은 신행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중생을 위한 복으로 작용한다.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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