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제복 입는 사람들에게’

2022-10-03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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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을 벗을 때 마다 그들은 악마가 아님이 곧 밝혀졌다. 그들은 아내를 사랑했고 자식들을 귀여워했으며 비탄에 빠진 친구를 위로하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일단 제복을 입으면 똑같은 사람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총으로 쏘거나 가스실로 보내 죽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지휘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내인 여인들과 누군가의 귀여운 자식인 아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 또한 두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사납게 날뛰어 통제할 수 없는 폭도의 작품이 아니라 규칙들을 준수하고 명령의 문구와 정신에 대해 꼼꼼한, 복종하고 규율 잡힌 제복을 입은 자들의 작품이었다.”(지그문트 바우만의 ‘Modernity and Holocaust’ 중에서) 다윗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겸손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으로 등극하자 사울의 인생관과 인격은 돌변했다.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위해서 권력과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폭군으로 변질했다.


사울은 정적을 죽일 때는 화려한 왕복을 입고 호위병과 군사를 동원했다. 사울에게 쫓기는 다윗이 놉의 성소에 숨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울은 정예부대를 대동하고 쳐들어갔다. 정탐꾼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 다윗은 이미 탈출했다.

분한 마음이 가득한 사울은 그 자리에서 에돔 사람 도엑에게 명령을 내린다. “너는 이 자리에 있는 세마포 에봇입은 제사장과 그의 아이들과 가족을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 이 말 한마디로 85명의 제사장 가족이 집단 학살당했다.

권위의식과 집단이기주의에 경도된 관료가 입는 제복은 인간정신을 바꾸어 놓는다. 제복을 입는 순간 관료는 자기 앞에 있는 인간 무리를 범주화 하는 기계가 된다. 의료 완장을 찬 육군 위생병은 모든 병을 두 종류로 범주화한다.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질환이면 환부에 아이오딘을 발라주고, 눈에 식별되지 않는 질환은 설탕물을 마시게 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화려한 제복을 선호하는 사람은 거의 독재자나 위험인물이 되었다. 그들은 제복을 품위 있게 입으므로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순종하고 따르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비인격적으로 대한다는 존재감을 형성해 나간다.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나 제복 입은 사람이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사회다. 오히려 제도나 제복 입은 사람이 약자를 존중하는 사회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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