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 론 - 생명의 존엄성

2022-09-20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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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솔로몬이라는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매우 현명한 왕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로 아이의 친 어머니를 찾아주는 이야기가 있다. 한 아이를 놓고 두 여자가 서로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한다.

솔로몬은 아이를 안고 “지금 내가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 절반씩 줄 것이다.”하고 선언하자 친 어머니가 놀라서 “그러지 마셔요. 그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하고 말하자 솔로몬은 그가 친 어머니임을 알고 아이를 친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대리모라는 것이 있었다. 임신이 불가능한 여인이 있으면 대리모에게 임신을 시켜 아이를 얻는 방법이다.
지금은 인공수정에 의한 임신이 가능하므로 대리모는 사라졌다. 대리모인 경우 아기의 소유권에 대한 소송이 가끔 있었다.


대리모가 자기의 뱃속에서 10개월이나 키운 아기에 대한 애착이 생겨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낳은 정이 더 깊을까, 키운 정이 더 깊을까? 둘 다 큰 사랑이어서 쉽게 결론 내리기는 힘들다. 실례가 뉴저지 주에서 발생하였다. 대리모 노릇을 한 화이트헤드 씨는 아기를 낳자 생각이 달려졌다.

이 아이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아이를 내놓을 수 밖에 없었지만 대리모와 친 어머니의 문제는 까다로운 논쟁을 여기저기서 야기시켰다.
아이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갖는 진실과 사랑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존엄(尊嚴)함을 인정하여야 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대를 잇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주는 릴레이 경주가 아니다. 생명의 승계라는 존엄한 일이다. 모태는 도구가 아니라 사랑이 여무는 존귀한 밀실이다.
아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존귀한 생명이다. 감사하게 받고 귀중하게 키워야 한다.

의사요 언어 학자인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돈벌이가 잘 되는 영국을 떠나 아프리카 람바네에 들어가 평생 흑인들을 돕고 산 것도 생명의 존귀함을 알고 몸을 바친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박사가 미국에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도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간 것도 흑인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연호 목사가 도시의 큰 교회를 가지 않고 부산 빈민굴인 좌천동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부인은 간호사였는데 병원 취직을 안하고 빈민들 구호에 전 생애를 바친 것도 생명의 존귀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존귀한 생명을 위하여 몸 바친 사람들을 위인 혹은 성자라고 부른다.
너무나 많은 위인들이 우리 주변에 있지만 그들을 세상은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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