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지금, 휴머니티가 필요해

2021-11-1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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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난 7일 하루 5,000명을 넘어 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겨울철 재확산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연말은 다가오고 돈 쓸 곳은 많다. 이렇게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얼마 전 커네티컷에 사는 올드 타이머로부터 전화가 왔다. “외출도 잘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는 데 한국 드라마가 볼 것이 없다. 제발 휴머니티 넘치는 드라마가 많이 나오기 바란다”고 했다.

사실, 이민 1세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이민 스트레스를 풀고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모든 드라마가 붉은 피를 철철 흘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납치감금 폭행하고 걸핏 하면 살인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에 끝난 드라마나 현재 진행 중인 드라마 대부분이 입만 열면 거짓말 하는 악녀, 친딸을 버리고 다시 만나자 죽이려는 엄마, 비도덕적인 관계에 불륜까지 다뤄 무개념, 무개연성. 복잡하게 꼬인 인간관계가 도가 넘었다.

너무나 쉽게 죽고 죽이는 드라마의 정점은 하하하,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 오징어 게임’ 이다. 현재 글로벌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드라마는 ‘너가 안죽으면 내가 죽는다’ 는 적자생존을 살벌하게 보여준다.

그래도 한줄기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것은 최후의 승자가 된 주인공이 죄책감으로 456억원을 쓰지 않고 스스로 가난을 택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2편에서 이 거대한 악의 무리와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 전세계에서 열광하는 팬들이 많은 반면 “너무 잔인해, 십대아이들 못보여주겠어.“ 하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에 휴머니즘이 담겨야 한다.(?) 휴머니즘(Humanism, 인문주의)이란 무엇일까, 우리에게 왜 필요할 까? 인본주의(人本主義)는 인간의 존재를 중시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 그리고 인간의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이다.

최근 1, 2년 사이 나왔던 의학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나빌레라’가 바로 휴머니티 가득한 드라마일 것이다.
이중 박인환(심덕철), 송강(이채록) 이 나온 ‘나빌레라’는 발레를 하고 싶었으나 가정을 돌보기 위해 꿈을 포기했던 그가 은퇴 후 치매에 시달리면서 발레를 배우는 이야기다. 남은 생동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 치유와 용기를 주는 이야기였다.

좀 못나고 평범하지만 인간미 가득한 캐릭터, 모든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인권,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본인은 좋다. 꽤 보수적이고 지루하고 따분하기조차 하지만 정의롭고 인간적인 캐릭터가 사랑, 우정, 가족애를 보여주면 TV 앞에 앉게 된다.

이러한 ‘휴머니즘’은 흔히 인간주의, 혹은 인간애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애란 무엇인가. 드라마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다.


사랑의 터키·쌀 보내기 캠페인, 불우이웃돕기 쌀 나눔 행사, 도시락 배달 등등 한인사회에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이웃과 정을 나누는 행사가, 추운 날씨에 길가에 나앉은 사람에게 따뜻한 먹을거리를 건네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매일 보는 풍경이 있다. 맨하탄 방향에서 롱아일랜드 방향으로 운전을 하고 가다보면 노던 블러바드와 파슨스 블러바드 인근에서 히스패닉 한무리를 보게된다.

새벽부터 나와 일거리를 기다리며 길거리에 서있는 이들에게 뜨거운 커피와 빵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때로 차를 세우고 내려서 나 역시 그 빵과 커피를 받아먹고 싶다. 허기진 위장을 타고 내리는 빵 한조각과 따스한 커피 한모금, 스산한 마음이 얼마나 위로를 받겠는가.

휴머니즘의 회복이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올 겨울날씨는 라니냐 현상으로 혹독한 강추위가 계속 된다는데, 인간끼리 서로 등 비비고 체온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방식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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