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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감사절 단상(斷想)

2024-11-25 (월)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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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감사절의 계절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인간이 얼마나 감사가 없고 인색하면 날짜를 정하고 감사 좀 하라고 권했을까.

추수감사절에 여러 의미가 등장하지만 시각을 좀 달리하면 칠면조(터키)가 제일 불쌍하다. 다음은 꿩 대신 닭이듯이 터키 싫어하는 입맛을 위해 대신 닭들이 엄청 죽어나간다.

아무튼 1년 중 감사하자는 날을 정해놓고 터키든 치킨이든 미물의 생명을 서슴없이 죽이고 먹는 축제가 추수감사절이다.


물론 감사절에 즈음해 갑자기 생명 존중의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감사는 쥐꼬리에 비견할 만치 초라하면서 칠면조를 대신 희생 제물로 삼아 감사를 포장한 후 거하게 먹고 마시는 느낌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추수감사절에 죽음으로 감사를 대신해주는 칠면조가 매년 5천만 마리를 상회한다는 통계가 있고 보면 대단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엄청난 희생을 애도하면서 미국 대통령은 칠면조 한 마리를 랜덤으로 뽑아 사면해준다는 관례가 있는데 차라리 그런 일은 안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살아난 칠면조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감사는 좋은 말이다. 늘 해야 할 우리들의 명제가 감사다. 특별히 추수감사절을 정한 까닭은 감사를 더 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하는 감사는 어떤 감사일까를 한번쯤 성찰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내 존재를 이 땅에 부각시킨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들, 그들을 생각하며 각각의 사랑을 되짚어보는 마음이다.

감사의 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이다. 마치 감사와 사랑은 연극대본에 나오는 지문(地文)같은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지문이란 극작가가 대본을 쓸 때 출연자들의 대사 옆에 연기에 대한 주문을 써놓는다. 그게 지문이다. 작곡가들도 악보에 “빠르게” “느리게” 등의 주문을 표기하듯이 영화나 드라마 대본에서는 이 지문이 상당히 중요한 연기 지침서가 된다.

예컨대 여자배우가 남자배우의 뺨을 때릴 때 작가가 그 옆에다가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세게 때린다”라고 써놨다면 남자배우는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뺨을 맞아야 한다. 그러나 남자배우가 여자한테 뺨맞는 게 모양 빠진다하여 그 지문을 무시하면 그 날로 그는 그 배역에서 내려와야 한다.

몇 년 전 트로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었는데 그때 아킬레스 장군으로 나온 연기자가 명배우 브래드 핏이었다. 그때 대본 중에 아킬레스 장군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투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 지문이 “신처럼 싸운다.”라고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도대체 어떻게 싸우는 것이 신처럼 싸우는 것일까? “개처럼 싸운다”라고 써놓았다면 다소 이해가 되겠지만 도대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신처럼 싸우라는 연기를 요구했단 말인가.

브래드 핏은 고민했고 며칠을 괴로워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지문을 두고 단 한마디도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작가와 감독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연기를 해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런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사랑하는 마음, 그 지문이 바로 감사를 이끌어내는 마음인 것이다.


그런 마음을 위해 “감사절”(Thanksgiving Day)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둘러앉아 콘을 먹고 펌킨을 먹고 터키를 먹고 마지막에 봉투 하나씩을 주기도 한다. 봉투를 우습게 생각하지는 말자. 요새는 그 봉투가 사랑의 정점일 수도 있다. 살만해진 이 시대가 만들어낸 풍속도이니 폄훼할 수 없다.

한국명절인 추석(秋夕)과는 또 다른 미국 감사절의 의미가 우리들에겐 더욱 각별하다. 감사절 후에는 크리스마스 풍경과 더불어 캐롤이 울려 퍼져야할 텐데 미국도 전과 많이 달라져 서울보다 조용해진 느낌이어 섭섭하다.

그래도 “Merry Christmas” 대신 “Happy Holiday”로 고착시키려는 풍조를 향해 “메리 크리스마스”를 써야 된다고 강력히 제안을 한 정치인이 있어서 다행이다.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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