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요한 아침의 나라

2021-09-21 (화)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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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우리 나라의 국호는 조선(朝鮮)이었다. 아침의 고요한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 백성은 본래 조용하였다.지금은 달라졌다. 서울에 가서 밤길에 골목길을 걸으면 취객의 고성방가(高聲放歌)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와국인들이 한국식당을 꺼린다. 맵고 짠 음식 때문이 아니라 각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말 소리가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시끄러우니까 내 말소리도 어느새 커지는 것이다.

나는 소학교 시절 글짓기 대회에 나갔던 경험이 있다. 장소는 산에 있는 큰 사찰이었다. 글짓기의 주제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랬더니 마음이 분주할 때는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바람 소리 속에 달랑달랑 울리는 풍경소리도 들리고 낡은 독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들렸다. 정말 이상하다. 내 마음이 고요해지면 안 들리던 소리들이 들리는 것이다. 사찰의 풍경은 높은 처마에 매달려있어 보통 때는 들리지 않는다. 항아리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흔히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들리는 소리들이 많다.

대만의 저명한 신학자 송천성 박사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 세 나라의 감정적 공통점을 정신적 정작 곧 마음이 고요함이라고 지적하였다. 어느 교회에서나 예배 순서에 묵도 혹은 묵상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교회당 안이 완전히 고요해진다. 모든 잡념을 없이 하고 오직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만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중요한 시간이다. 예수는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혼자 광야로 나가 기도와 생각에 잠겼다. 중요한 시간이었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 한국의 국회 장면이 나오는데 고성은 물론 의장석을 강제 점거하는 소동을 볼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인들이 그런 장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옛말, 시끄러운 백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웅변이나 달변을 상위에 놓았으나 지금은 침묵을 위에 놓아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유명한 역사소설로서 엔도슈사꾸가 쓴 ‘후미에’가 있다. 후미에란 일본어로 ‘발로 밟는 그림’이란 뜻이다. 약 250년 전 일본에 예수교(첨쭈교)가 들어왔을 때 대학살을 하였다. 일본에 신도가 있고 천황 숭배가 있는 이상 서양 종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교도들을 체포하여 소위 ‘후미에’라는 것을 밟게 하였다. ‘후미에’란 ‘밟는 그림’이란 뜻이다. 목판에 예수상을 그려놓고 체포한 신도들을 밟게 한다. 밟으면 살려주고 안밟으면 죽이는 즉석 처형 방법:이다. 예수교도들은 후미에를 밟으러 가는 전날 발에서 피가 나도록 깨끗이 씻고 “예수님 내일은 당신을 밟겠으니 용서하셔요’하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로마에 가면 2000년 전에 건조된 원형극장을 볼 수 있다. 거기서 체포된 예수교도들이 굶주린 사자에게 찢겨 죽는 장면을 보고 웃고 즐기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200년 전에 들어온 천주교도들이 대학살을 당하였으며 그 처형장이 현재의 제3 한강교이다. 지금은 예수를 쉽게 믿으나 옛날에는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다.

미국의 저명한 시인 칼 샌드버그 교수가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습니까”하는 학생의 질문을 받고 “생각할 조용한 시간을 되도록 많이 갖게”하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좋은 글은 작가의 깊은 생각과 상관관계에 있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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