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 유리 냄비

2021-07-26 (월) 이은정/시인
크게 작게
가득 채워진 물
반으로 줄고
어깨 들썩이며 흘러넘친
젖은 신음 흥건하다
투명한 유리 안
닳고 닳아 증발된 수증기만큼
진한 향 남아있는
한 여인의 숨결
코끝에 와닿는다
제 몸보다 부풀어진 그릇 안에
줄지은 여덟 분홍 이름표들
수런대는 바깥 찬공기에
마른 침 한번 삼킨 후
자리 털고 일어나 탯줄을 잘랐다지
오랜 시간
쉴 틈없이 밀려오는
또 다른 이름표들의 행렬
뽀송뽀송한 배냇저고리에 감싸 안는
엉겅퀴 같은 두 손
그 손의 온기, 추모하며
냄비에 끓여진
뜨거운 차 한잔 마시며
시린 마음 달랜다

* 7월25일 어머니 기일을 추모하며

<이은정/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