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망대 - 문명의 전환과 국제정치

2021-07-02 (금) 써니 리/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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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등소평과 간디가 공론화시켰던 ‘아시아의 세기’가 드디어 도래할 것인가. 근대사회이래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며 전지구적 가치와 이념으로 현대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도 민주주의 가치를 대체하는 것이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고대부터 중세까지 인류문명의 거대한 잠재력을 가졌던 아시아가 서구문명이 일궈놓은 민주주의 가치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문명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인식론적 전환이 기대된다. 서구 민주주의가 최대치로 발전시킨 인류문명의 한계점으로 환경문제나 생태계 파괴에 따른 각종 사회문제들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강대국인 중국, 한국, 일본은 세계를 움직일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는가. 많은 국가들로 이루어진 유럽이 비슷한 환경과 문화수준속에서 근대문명의 주역이 되었다. 이를 이어받어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데도 별다른 장애물이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세기를 주도할 중국, 한국, 일본은 출발부터가 삐그덕 거리며 과연 아시아의 세기가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킨다.


무엇보다 중화사상에 천착한 세계사적 관점을 견지해온 중국은 미중갈등의 중심에서 세계패권에 대한 야욕으로 경제와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에게 아시아의 세기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형제국주의 국가전략일 뿐이다.

유럽과 미국이 국제질서와 인류문화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력이 배제된 패권주의적인 중국의 세계관은 위험천만하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부유하게 될 것이고 중국의 독재와 횡포로 국제사회는 암울한 환경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일본 또한 이미 후진국가로 접어들었고 일본민족에 대한 징벌론적 관점에서 일본은 몰락이라는 수순을 밟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아시아의 문명이 갖고 있는 동양의 인본주의적 가치는 공산주의를 거친 중국과 2차대전의 중심에서 국제사회에 패악질을 한 일본에 의해 그 본연의 모습이 훼손되었다.

아시아의 세기에 대한 기존의 잠재력을 중국과 일본이 여지없이 망가뜨려 놓은 것이다. 막상 아시아의 세기가 도래했으나 발흥시킬 민족적 에토스가 대부분 소멸된 것이다.

경색되고 폐쇄적인 사회제도를 갖은 중국은 인류문화의 변혁에 부흥할 문명사적 잠재력을 개발할 생각이 없고 오직 자국 이익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일본도 이미 쇄락의 길을 걸으며 미래문명에 대한 잠재력 개발에 여력이 없고 자국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

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이란 전망은 이제 막연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공동체의 연대속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창출하는 인류사의 보고가 될 것이란 문명사적 관점은 중국의 횡포와 일본의 비열하고 후진적인 역사의식이 흐려 놓았다.

반면 아시아 전반의 국가들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기반으로 연대의식을 확장하는 한국은 기대치에 상당히 부응한다. 그러나 한국이 아시아의 세기를 주도하며 문명사적 전환을 이끄는 주역으로 국제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란 사고도 국수주의적인 발상이다.

인류문명의 주역인 미국은 미래에도 새로운 문명을 이끄는 역할을 지속시키려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라는 인류최대의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제정치는 자유민주주의를 보완할 새로운 흐름에 목말라 있다.

단지 유럽이나 미주대륙에 비해 아시아가 아직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않았다 해서 맹목적으로 아시아에 그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편협한 발상이다. 국제정치는 문명의 전환이라는 인식론적 기로에 서 있지만 여전히 지역주의를 극복한 인류보편의 패러다임을 고대하기 때문이다.

<써니 리/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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