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자율주행차 사고책임

2021-06-02 (수)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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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율주행 자동차가 현실 세계로 성큼 다가왔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교통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가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자율주행차 사고로 희생된 첫 번째 보행자는 49세 여성 일레인 허즈버그(Elaine Herzberg)로, 2018년 3월18일 애리조나주 템피에서 자전거를 끌고 길을 건너다 우버의 자율주행 시험차량에 치여 변을 당했다.

‘보행자가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와 자동차의 센서가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고,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운전자 역시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템피 경찰의 초동 조사보고가 있었으나 우버는 경찰조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고 발생 10일만에 피해자 측과 손해배상에 합의하고 사건을 서둘러 봉합하였다. 이로써 외부적으로는 자신들 차량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모양새가 되었다.


민사문제와 별도로 경찰당국은 교통안전국과 함께 18개월간의 조사를 통해 운전자 라파엘라 바스케즈(Rafaela Vasquez)가 사고 당시 전방을 주시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바스케즈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그녀는 자신이 운전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질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어 올해로 예정된 재판에서 자율주행차에 대한 법적 시비가 처음으로 가려질 전망이다.

자율주행 차량사고의 법적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선 SAE(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 미국자동차 기술학회)에서 정한 레벨 0에서 레벨 5까지 총 6단계 분류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레벨 0은 운전자가 주행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고전적 단계이고, 레벨 2는 컴퓨터가 차간 거리나 차선유지 등으로 운전자에게 단순 도움을 주는 단계를 일컫는데 0~2단계에서 생긴 사고는 전적으로 운전자 책임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메이저 자동차 회사가 만들고 있는 레벨 3과, 개발에 착수한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이다. 레벨 3은 고속도로와 같은 특정 구간에서는 컴퓨터가 주행을 담당하다가 위험시에만 운전자가 개입하는 ‘조건부 자율주행’ 시스템 단계이고, 레벨 4는 악천후와 같은 매우 제한적 상황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AI가 주행 제어를 담당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 3~4단계에서 발생하는 사고대책이 바로 우리가 풀어야 할 현안인 셈이다. 예컨대 차량 결함으로 사고가 났다면 기계장치 부분은 GM과 테슬라, BMW, 현대자동차 같은 자율주행 자동차 제조사가, 주행 프로그램 부분은 구글이나 애플, 우버와 같은 IT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설혹 자동차에 결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앞의 바스케즈의 경우처럼, 운전자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다면 운전자 역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사고발생 원인을 밝혀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누구에게 과실이 있는지를 따지지 않고 지정 보험회사가 피해보상을 전담하는 노폴트 보험(no fault insurance) 등이 거론되고 있다.

SAE 최고단계인 레벨 5의 자동차는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음주운전도 문제가 되지 않고, 사고가 나더라도 운전자가 아닌 자동차 제조사나 프로그램 개발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레벨 5의 자동차는, 아직까지는 여전히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먼나라 얘기라고 보면, 올해 진행될 바스케즈 재판에서 레벨3의 자율주행차를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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