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The Sound of Rain

2021-05-27 (목) 수에나/ 본명 김주연·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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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예보에 의하면 오늘 오후 3시 이후부터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고 한다. 오전 내내 비구름이 하늘을 덮어 곧 내릴 비를 암시하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기다렸다.

오늘 분명히 내가 원하는 비가 내릴 것이다. 뉴욕은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다. 맑은 날이 훨씬 많다 보니 비 내리는 날에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룬다. 나에게 비는 그만큼 소중하다. 비가 내리는 날은 나의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창문을 통해서든지, 아니면 직접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소란한 세상에서의 온전한 고요를 누린다.
나의 작품 “The Sound of Rain”은 비와 함께 하는 작품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선물을 받듯 기분을 좋게 해준다.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많은 선물을 쏟아 부어주지 못한다. 나는 빗방울을 맑은 날 내리쬐는 햇살의 또 다른 형태로 받아 들인다. 그러므로 비는 신나는 날의 축복이다. 비는 원래 소리가 없다.

그리고 정해진 어떤 모습도 없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며 예술적 감흥을 일으키는 자연의 선물이다. 그래서 오늘의 비 소식이 기다려졌고 지금 이렇게 기다리는 중이다.
오후 3시가 되었다. 아직 땅 바닥에 빗물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봤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오전의 하늘 먹구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곧, 잠시 후, 잠깐만 이런 식의 신호만 보내는 것 같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게 지루하지는 않다. 기어이 오고야 말 테니 말이다. 나는 지금 창가에서 하늘을 보며 Chopin의 Nocturne을 듣고 있다. 피아노 선율에 따라 나의 몸이 감전되듯 짜릿하다.

클래식은 나와 동체처럼 음률이 피부로 전달된다. 음악은 청각적으로 나와 함께 하고, 비는 시각적으로 나와 함께 한다. 그렇기에 작품을 할 때는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다. 청각에 의한 자각은 그림을 그릴 때와 달라서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는 오직 나의 감정과 비가 전해 주던 소리에 집중한다. 작업실의 아주 조용한 공간은 무중력의 우주에 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완전한 작품의 세상을 펼쳐간다.

어두운 밖을 보니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주방에서 원두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원두 향이 유난히 고소하다. 오늘은 천천히 기다려 줘야 하는 날인가 보다. 하기야 아무런 대가 없이 세상에 내리는 비를 기다리는 것이 내가 지불하는 대가라도 된다면 좋을 일이다.

커피잔을 들고 다시 창가로 돌아왔다. 유리 창에는 빗방울 자국이 몇 군데나 보였다. 나는 유리창의 빗방울을 반갑게 마주했다. “ 반가워.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수에나/ 본명 김주연·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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