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맨발과 예쁜 손가락

2021-05-21 (금) 김길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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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본지에 어린이날에 대한 감동어린 좋은 글들이 몇 개 소개 되었다. 게재된 글들을 읽으며 감흥이 일어나 글 하나를 적는다.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어린이와 인연이 많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목사의 길이었기 때문에 주위엔 어린 아이들이 항상 북적거렸다. 그 상황에서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던 녀석들이 두 명 있다.

첫 번째는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서 목회 할 때다. 교인을 방문 차 그 집에 가면 그 집 아들 녀석이 언제 보았는지 2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계단을 바삐 내려와 문을 열고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앞마당 잔디밭을 뛰어와 나의 품으로 안기며 “목사님 !” 하고 큰소리치며 달려든다, 10살 짜리다.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흔히 집에 어른 손님이 오면 아이들은 대개 시큰둥 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데 그놈은 달랐다. 이름은 브라이언 김.

두 번째는 목사를 은퇴하고 뉴욕 퀸즈에 있는 작은 교회에 자리를 메꾸어 주었는데 못하는 성가대를 하며 특송을 가끔 불렀다. 성가대 대원 가운데 꼬마 바이올린 주자가 있었다. 그 아이가 바이올린을 하고 내가 특송을 한다. 늘 18번곡인 나운영 선생이 작곡한 시편 23편과 고작 찬송가 두어 곡이 레퍼토리다. 11살짜리와 한 늙은이의 앙상블 하모니다. 예배가 끝나면 특송이 좋았다고 교인들이 칭찬 하는데 사실은 바이올린 연주를 한 그 녀석을 두고 하는 칭찬일 거다.


예배가 끝나면 큰 교회보다 더 푸짐한 친교실 식사를 한다. 준비하는 동안 그 녀석과 교인 몇이 둘러앉았을 때 난 일부러 그 녀석에게 “ 너 !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니 ?” 라고 장난기 섞인 질문을 하면 열 번이면 열 번 예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 완전 여우다”. 그 마음을 아는 그녀의 부모는 옆에서 빙그레 웃곤 한다.

어느 날인가, 그녀의 아버지가 너 정말 목사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 라고 묻자 아무렇지도 않게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이민 온지 불과 2년도 안되어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을 한 영특한 아이다. 지금은 줄리어드 예비 학교를 마치고 세계적인 사립학교 뉴햄프셔 주에 있는 필립스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최근 6만달러 장학금도 받았고 학교에서 독주회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9학년 반장이 되었단다. 이름은 박재현.

어린이날이 되면 유난히 그놈들 생각이 난다. 그녀의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것이 고맙다며 며칠 전 식당에서 갈비탕도 사주었다. 내 나이 늙어가며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 한 가지 마음다짐을 했다. 남은 생애 동안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매일 같이 기도 하리라, 나의 생애에 감격을 준 녀석들이 아닌가?

<김길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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